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는 자 본인에게 돌아올 고통 알아야

  직접 그 입장이 돼 볼 것. 제법 익숙한 말이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너무나도 어렵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겉으로는 타인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추구하곤 하지만 막상 다른 누군가를 평가할 때는 철저히 자신의 시각 속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알아 가면 갈수록 자신과는 차이점이 많은 타인을 자신의 입장, 환경을 기준삼아 바라본다. 필자는 이러한 태도를 일종의 ‘폭력’이라고 일컫고 싶다.

  사실 필자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어느 덧 이대학보에 들어온 지 횟수로 3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곳 편집국에서 자그마치 세 번이나 보냈다. ‘직접 그 입장이 돼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수습기자, 정기자, 차장기자, 부장기자 그리고 이제 이대학보에서의 마지막 직책인 편집국장을 끝마치며 얻은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는 것이지만 이대학보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때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매주 한 호의 기사방향을 결정하고 이끌어 내야 하는 입장임에도 그 역할에서 타의에 의해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대학 신문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봐줄 수도 있는 것이고 충분히 융통성 있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됨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은 필자 스스로를 탓하게끔 하기도 했다.

  한 해 동안 벽을 넘고자 필자는 노력했다. 뛰어도 보고, 돌아가려도 해보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항상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수많은 잡념 끝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는 편집국장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나도 ‘행복한’ 편집국장이 되고, 기자들 또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편집국장이 되리라고 결심했던 필자에게는 너무나 초라한 감정이었다.

  이번 호를 끝으로 필자는 편집국장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그간 필자를 고민하게 했던 넘을 수 없는 벽은 언제고 다음 편집국장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임기 동안 넘을 수 없는 벽을 정말로 넘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보다는 후배의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여전히 필자를 괴롭힌다. 

  넘지 못했던 벽처럼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의 행동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일수도 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고 챙기며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다른 이의 입장에 서서 오롯이 그를 바라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심지어 아직 어린 학생들한테 조차도 타인에게 쉽사리 믿음을 주지 말고 오직 너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가르치는 시대에 말이다.

  결국 이렇듯 여유가 없는 팍팍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역설적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에 과도한 가치를 부과하게 되는 듯하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혀 결국 못 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에 이른 나르키소스처럼, 당장 눈앞에 비친 자신의 입장과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이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고통 속에 빠트릴 수 있다. 이제라도 누군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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