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저장공간이 추억을 대신하는 현실

  나는 문득 학교 가는 길에 하늘이 참 푸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하늘이었다. 집에 나와서 하늘을 보기 전까지 내 시선은 언제나 바닥을 향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학교 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 편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스친 수많은 사람과 익숙한 길거리의 분주함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해서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얼마가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응시하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주변을 바라보는 대신 손안에 들린 작은 휴대폰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하늘을 보기 전까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스쳐 가는 무엇들을 흘려만 보냈다.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꽤 많은 사람이 익숙했던 거리를 둘러볼 때 낯섦을 느끼거나 정말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하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고 하더라도 앞을 보지 않고 걷다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험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 일상에 무관심해졌다. 대신에 우리의 눈과 귀는 핸드폰에 매료되었다. 아침을 시작하는 시작부터 밤을 맞이하는 끝까지 많은 시간을 휴대폰과 함께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은 무심한 일상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을 더듬어 보면 간직하고 싶은 추억 속에도 휴대폰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날의 한 순간을, 한 장면을 추억하는 것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는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예전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감각으로 그날을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추억하고 싶었던 그 날의 바람의 냄새와 거리의 소음들, 눈에 담았던 다소 왜곡된 감각들로 더 아련하게 기억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점점 순수한 기억을 잃고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 나는 카메라에 비친 화면으로 순간을 저장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억 일부분은 차가운 기계의 저장공간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다. 나는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변색되는 머릿속에 맴도는 기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사람들은 기억을 외부화시킨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문구가 딱지금의 우리 같다.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기억을 외부화시킨다는 말이 내게는 좋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소리와 눈 그리고 내게 닿았던 느낌과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 훨씬 좋다. 이 느낌이 기억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계속 상기시켜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마저 들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정말 담고 싶은 순간에는 주변을 돌아보고,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려 한다. 기록하는 것보다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정말 소중할 것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면 순간을 저장하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담아보기를 바란다. 어느 날 희미하게 더듬어 그날의 시간을 추억해보기를, 기억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떠올리려고 노력해보는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공유했던 머릿속 기억의 퍼즐이 얼마나 변했는지 어떻게 더 미화시켰는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겠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웃었는지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며, 무엇을 닮았었는지 우리의 이야기는 어땠는지 맞추어보는 재미가 정말 ‘기억하는 것’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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