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4시에 만난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부지영 감독이 영화 '카트'에 대해 얘기했다.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청년들은 곧 노동자들이 될 사람이죠. 겉으로 드러난 노동자의 삶이 아닌 그 아래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부지영 감독(교육심리·94년졸)을 19일 오후4시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카트’가 개봉한 11월13일. 부 감독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날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분신한 故 전태일 열사 44주기 추모일이자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날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날 2심의 판결을 뒤집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는 경영진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우연이었지만 필연 같았어요. 故 전태일 열사 44주기와 제 영화가 노동자 인권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비슷하니까요. 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판결에 대해서 대법원이 2심 결과를 뒤집고 회사 경영진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죠.”

  영화 ‘카트’는 2007년 ‘홈에버(Homever) 사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홈에버 사태는 홈에버 노동자들이 지난 2007년 6월30일부터 512일간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에 맞서 벌인 싸움이다. 파업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었는데 그 중 여성노동자들의 연대감에 주목한 부 감독은 영화에 노조원들이 서로 지나온 이야기를 하고 단체 줄넘기를 하는 장면을 담아 그들이 서로를 믿고 뭉치는 모습을 표현했다.
“어떻게 그토록 오랜 시간 파업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이게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이에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당시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죠. 오랫동안 그들이 회사와 싸울 수 있던 힘은 유대감이었어요. 마트를 점거하는 동안 회사 측이 물과 전기 공급을 끊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노조원들은 같이 자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등 가족처럼 더 끈끈히 연대하며 서로에게 의지했던 거죠.”

  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파업하는 노동자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흔히 사람들이 자신도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고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라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준비로 힘들기 때문에 현실을 마주하길 꺼리더라고요. 노동자 세계는 자신들과 다른 세계라며 외면하는 것이죠. 그러나 대학생이야말로 노동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그들은 곧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외면하면 안 돼요.”

  그는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44년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는 열악한 노동 환경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음을 지적했다.

  “요즘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최저 임금을 지키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고용주가 많아요. 하지만 노동자 권리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보니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죠. 제대로 배워야 우리의 권리를 필요한 때에 행사할 수 있어요. 회사의 해고가 불법임을 알리고 노조를 만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에요.”

  영화가 사회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부 감독은 영화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촉발점이 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가 촉발점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가장 큰 메시지는 ‘인간답게 사는 것’의 의미다. 영화에서 ‘선희’는 왜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쳐가며 파업을 하냐는 고객의 비난에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라고 호소한다. 부 감독이 생각하는 ‘인간답게 사는 것’은 바로 인간만이 가진 이성과 자존감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돈이 안 된다고 사람을 회사 측 마음대로 자르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이성적인 사람은 당연히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존중해야 해요. 또 인간이라면 누구든 자존감을 지키며 억울할 때는 자기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하고요. 영화에서 노조원들은 그동안 억울하게 지내오다가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죠. 회복된 자존감을 다시 버릴 수 없기에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이들에게 주위를 둘러보며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미래를 살아야하는지 성찰하라고 당부했다.

  “불행한 노동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행복해도 되는지 한번 성찰할 볼 필요가 있어요. 영화 ‘카트’를 통해서 공감과 연대란 무엇인지, 스스로 앞으로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어요.”

영화 '카트'
드라마/11월13일개봉/12세 관람가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김강우 주연
정직원을 꿈꾸며 열심히 일하던 ‘더 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지를 받는다. 정규직 전환을 눈 앞에 둔 선희(염정아)를 비롯,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등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들이 용기 내 노조를 만들며 회사와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 실화인 2007년 ‘홈에버 사태’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사회적 약자에 주목한 의미 있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55만 관객(20일 기준)을 동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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