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오후6시 학관 414호에서 드라마 ‘왔다 장보리’, ‘아내의 유혹’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의 ‘왔다! 드라마 작가 만나보리!’ 특강이 열렸다. 김가연 기자 ihappyplus@ewhain.net

  인문과학대학(인문대)은 20일 오후6시~7시 학관 414호에서 ‘왔다! 드라마 작가 만나보리!’ 특강을 열었다. 학생 약 40명이 참석한 이번 특강에는 드라마 ‘왔다 장보리’, ‘아내의 유혹’을 집필한 김순옥(국문·93년졸) 작가가 연사로 나서 드라마 작가로 일하며 겪은 경험담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작가는 드라마 작가에 등단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가부장적인 남편 곁에서 자식을 키우는 무료한 일상에 회의감을 느끼던 그는 우연히 드라마 극본 공모전 광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평범한 주부로 평생을 이렇게 집안일만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던 때 텔레비전에서 MBC 단막극 극본 공모전 광고를 봤어요. 단막극 극본 공모전은 제 답답한 일상의 탈출구였죠.”

  그가 드라마 작가로 등단하게 된 과정은 그녀의 드라마처럼 우연과 행운의 연속이었다. 당시 신문에서 어느 가정이 아이를 입양했다가 그 아이가 아프자 파양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 내용을 3일 만에 드라마 대본으로 풀어냈다. 씬 넘버(scene number) 등 기초적인 드라마 극본 지식도 없었지만 그는 360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공모전에 당선됐다. 당시 당선된 극본은 MBC 베스트 극장 ‘사랑에 대한 예의’로 방영됐고 이후 MBC 드라마 작가로 계약해 활동했다.

  그러나 김 작가는 등단 이후, 드라마 작가로서의 한계에 부딪혔다. 아무리 좋은 대본을 써도 감독이 대본을 선택해야 드라마 작가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그를 드라마 작가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로 내몰았다. “드라마는 소설과 달리 대본을 1000개를 써도 누군가가 연출을 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좌판에 놓인 고등어처럼 감독님에게 잘 보여 내 대본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등단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 그를 다시 작가의 길로 이끈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그는 치열한 드라마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막장’을 택했다. “MBC에 무작정 들고 찾아간 시놉시스 3개 중 1개가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로 방영됐어요. 그런데 중간에 3주 안에 시청률을 15%까지 올리지 않으면 다른 유명작가로 교체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됐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출생의 비밀 등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다 넣어 전개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내용적 측면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3주 동안 하루에 시청률이 1%씩 오르는 기적을 낳았죠.”

 ‘웃어요 엄마’, ‘다섯손가락’ 두 작품이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한 경험은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등 히트작 이후 교만해진 그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김 작가는 말했다. “방송국은 잘되면 잘해주지만 망하면 그 즉시 폐품처리 해버리는 냉정한 곳이에요. ‘아내의 유혹’이 흥행했을 때는 모든 제작사들이 직접 찾아와 계약요청이 쇄도했지만 반대로 다른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자 모든 제작사와의 연락이 끊겼죠. 정상과 밑바닥을 모두 경험한 후에야 초심으로 돌아가 올해 히트 드라마 ‘왔다 장보리’를 쓸 수 있었어요.”

  막장 드라마의 대표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그는 막장 드라마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온 국민을 감동시키고 눈물바다로 만드는 명작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드라마가 하루하루의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내일을 궁금하게 하고 기다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병원의 환자들이 제 드라마를 보면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요. 막장 드라마는 그 환자들이 드라마를 보는 시간 동안 아픔을 잊게 해주죠. 저는 그런 드라마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병이나 아픔, 슬픔을 잊을 수 있게 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특강을 들은 권여진(국문·13)씨는 “드라마로 접할 때는 못 느꼈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드라마 한 회마다 사람을 사랑하는 김 작가의 마음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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