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의 무게에 대하여

  법률의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필봉(筆鋒)의 힘은 더욱 위대하다. -괴테

  지난 10월2일, 언론과 권력간의 관계를 다룬 영화 ‘제보자’가 스크린에 올랐다. 영화 속에서는 진실을 말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가 끝없이 대립했고, 진실은 영영 사라질 듯 보였다. 하지만 힘든 투쟁 끝에 언론이 세상에 진실을 알린 극적인 순간, 필자는 통쾌하기보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졌다. 어쩌면 필사적으로 진실을 담으려던 기자, 그 펜(pen)의 무게에 감정을 너무도 이입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를 불편하게 했던 펜의 무게를 직면했다. 본지가 진행하던 독자위원회에서였다. 독자위원회는 6일~27일(목) 정기적인 토론을 통해 3년간의 <이대학보>의 내용을 분석, 평가한다. 우연의 일치로 독자위원회가 평가하는 신문은 필자가 이곳에 몸 담았던 기간과 일치했고, 그 결과 필자는 3년간의 흔적을 타인의 눈과 입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인의 눈과 입이 말하는 필자의 흔적은 예상치 못한 만남처럼 낯설었다. 기사 하나하나에 대한 기억이 사진처럼 선명하다가도 어느 순간 현상(現像)이 잘못된 부분 마냥 뿌옇고 모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간만에 먼지 낀 앨범을 꺼내 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래 전부터 글을 좋아했던 필자에게 글은, 지극히 사적인 대나무 숲과 같은 존재였다. 글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는 행위로 느껴졌다. 그러던 중 대학에 들어와 학보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필자의 글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됐다. 그리고 대중에게 글이 공개된다는 부담감은 필자로 하여금 가느다란 펜촉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 펜촉의 끝에서 필자는 ‘기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비록 ‘학생’기자라는 반쪽짜리 신분이었지만 미지의 누군가가 글을 읽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필자를 자극했고, 그 미묘한 자극은 필자를 3년 째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치 술에 잔뜩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취객처럼 황홀하게, 가끔은 어지럽게, 그렇게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동안 이화를 누빈 필자의 글이 이화인 개개인에게, 더 나아가 학교 전체에 어떤 의미가 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글에, 기사에, 펜에는 그 무게가 있다.

  이러한 무게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은 그 무게에 짓눌려 숨을 쉬지 못한 적도 있었고 펜 끝에서 느껴지는 책임감에 종종 괴로운 눈물을 흘렸다. 호기롭게 학보사에 발을 디디던 시절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이 있었다.

  필자는 올해로 3년째 <이대학보>에 몸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여섯 번째 상록탑 칼럼을 마지막으로 퇴임을 앞둔 상태다. 3년간 감당해 온 펜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펜의 끝에서 시작되는 진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길고 긴 문장 끝에 잠시 그 펜을 내려놓으며 필자는 말하고 싶다. 괴테의 말은 진정 옳았노라고. 마침표 하나조차 그 무게가 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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