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후7시 일명 ‘이화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이화인, 트랜스젠더 벗(왼쪽)이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가연 기자 ihappyplus@ewhain.net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트랜스젠더 벗(트벗)이라는 이름으로 소통하는 이화인이 있다. 본교를 졸업한 지 9년 뒤인 2013년, 맞지 않는 여자의 몸을 버리고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ㄱ씨가 그 주인공. 11월20일 제16회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일명 ‘이화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그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변 보호를 위해 기사에서는 그를 ‘트랜스젠더 벗(트벗)’이라고 칭한다.

  짧게 자른 머리에 짙은 눈썹, 듬직한 체격. 트벗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30대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이부심(이화여대생이라는 자부심) 높은 남자라고 소개하며 호탕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트벗은 어린 시절부터 보통 여학생들과 달리 남성적 기질이 돋보였다. 그 차이는 사춘기 시절 더욱 도드라졌다. 그에게 다가 오는 2차 성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은 초경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초경함으로서 여성임을 스스로 다시금 인식해야하는 것부터 매달 피 묻은 생리대를 마주하는 것은 악몽 같았어요. 남자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가는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트벗은 이화에 입학후 초창기까지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의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것은 3학년 때 들은 본교 여성학 수업에서였다.

  “어릴 적에는 인터넷도 없었으니까 레즈비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여자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레즈비언과는 뭔가 다르다고 느끼던 중 여성학 수업에서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접한 후 ‘내가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의 정체성을 가진 트벗이 여성의 몸으로 살기란 고통스런 일이었다. 화장실 등 일상적인 부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부분까지. 말 그대로 트벗은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여자치고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지만 제게는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여자 몸이니 점프력 등 운동능력이 다른 남자보다 떨어졌으니까요.”

  평범한. 그가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말이었다. 트벗에게 평범함은 가장 이루기 힘든 단어였기 때문이다.

  “취업 면접 때 면접관이 서류를 보면서 ‘여자예요?’ 란 질문을 몇 차례나 묻는 등 ‘2’라는 숫자는 저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 ‘2’를 ‘1’로 바꾸려면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해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남자가 되기를 ‘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남자였어요.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을 가는 ‘평범함’을 누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죠. 따라서 저에겐 이 수술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자신을 여자로 태어나게 한 신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고 한 트벗. 그만큼 마음이 강인하고 절실했던 그도 수술 전 부모님에게 수술 사실을 선뜻 털어놓기 어려웠다. 그래서 첫 수술로 입원할 때는 일부러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놀러간다고 했는데 한 번은 현관까지 직접 나오셔서 저를 지켜보시더라고요. 첫 수술 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고서는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죠. 아무리 어릴 적부터 남성성이 돋보이는 딸이었어도 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충격이 크신 것 같았어요.”

   2011년부터 자궁 및 난소제거 수술을 시작으로 2년에 걸쳐 가슴제거수술, 성기수술을 마친 그는 수술로 힘들었던 당시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취에서 깬 후 처음 떠오른 말은 욕이었어요. 주민등록번호에 나오는 숫자 ‘1’ 그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서글펐죠.”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은 2001년 하리수의 등장으로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 인식은 이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만으로 거부감을 표현하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있는 지인이 제 앞에서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지? 친구라면 모를까’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트벗은 언젠가 본교 근처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제 작은 꿈은 ‘이대 나온 남자가 만든 빵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빵을 판매하는 거예요. 트랜스젠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역이용해서 장점으로 만드는 거죠. 사람들이 어떻게 말해도 제가 ‘이화의 아들’이라는 점은 변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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