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스나브뤼크대(Osnabrueck University)

  한 학기 동안의 독일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이화로 돌아 온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내가 정말 독일에 살다 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생활에 완벽히 적응해버렸지만, 시험과 과제에 치여 힘들 때면 가끔씩  그 곳에서의 여유로웠던 생활이 그리워지곤 한다. 독일에서의 추억들이 완전히 잊혀 지기 전에, 지난 6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기록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다 왔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미국 혹은 영국 교환학생이 아닌 왜 독일 교환학생을 선택했냐고 묻곤 한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미권으로 가서 그저 영어실력을 늘리기보다는 유럽으로 가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유럽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니 문득, 전공 수업시간에 많이 접해왔던 독일이 눈에 들어왔다. 마르크스, 베버, 짐멜 등 독일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접하면서 독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독일의 대학교들 중 가장 상위에 있던 오스나브뤼크 대학교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독일로 떠난다는 기쁨도 잠시, 출국준비를 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는 오스나브뤼크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내가 스펠링을 잘 못 친 건 아닐까 하고 다시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똑같았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겨우 얻을 수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정보가 턱없지 부족한 곳이었다. 지난 3월, 나는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 후, 4시간 정도 기차를 탄 후에야 비로소 오스나브뤼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앙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동안의 걱정들이 기대로 바뀌었다.  오스나브뤼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도시였다. 게임 ‘심즈’에서나 볼법한 주택들이 즐비해있었고, 백화점·레스토랑 편의시설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들판에서 뛰노는 말과 양도 만나볼 수 있었다. 대학 생활 역시 만족스러웠다. 중세시대에 성으로 썼던 건물을 대학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수업은 정원 30명 미만의 소수강의에 토론식으로 진행되었다. 미드나 영화 속에서만 봤던 강의실에 내가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설렜다. 동화 속 마을 같은 도시, 아름다운 자연환경, 잘생긴 게르만 청년들, 친절한 친구들 등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시간이 언제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꿈만 같던 독일생활에 적응을 할 때 쯤, 가혹한 현실들이 나를 괴롭혔다. 언어실력 때문에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었고, 문화가 다른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어려웠다. 또한 한국에서 스펙을 쌓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여기서 이렇게 놀아도 될까?’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교환학생을 통해 대단한 것을 경험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 때 ‘무엇인가를 얻지 않아도 괜찮다’는 친구의 조언덕분에 우울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남은 기간 동안은 남에게 보여 지기 위한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삶을 살도록 노력했다. 그 덕분에 독일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대단한 무엇인가를 얻진 못했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음식 대접 , 칸 영화제 참석, 지역 라디오 쇼 녹음 등 한국에서 하기 힘든 경험들을 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9개월 전, 낯선 땅이었던 오스나브뤼크는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문득 그 곳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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