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병기법안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힘, 바로 풀뿌리 민주정치의 저력입니다.”

▲ 미국 버지니아 한인회 홍일송 회장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본교 국제대학원과 공공외교센터는 10월30일 오후7시30분~9시 국제교육관 702호에서 강연 ‘미국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든 풀뿌리 외교의 힘’을 개최했다. 연사로 나선 미국 버지니아 한인회 홍일송 회장은 올해 미국 최초로 버지니아 주 의회에 ‘동해병기법안’을 통과시키고 2007년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찬성하게 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강연에는 본교 국제대학원 석사과정, 박사과정 학생들과 버지니아주 한인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홍 회장은 동해병기법안이 처음으로 미국 버지니아 의회에 상정됐던 재작년을 회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가 동해병기법안 상정에 몰두하던 때는 '임진년'이던 재작년. 그는 임진왜란 당시 조상들이 나라를 지켰던 각오로 일에 임했다. 당시 버지니아 한인들은 동해병기법안을 상원 교육위원회에 상정했지만, 찬성 7표, 반대 8표로 부결됐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올해 재차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본격적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 버지니아 한인 서명운동을 시작한 재작년이 임진년이었어요. 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420년 전 이순신이 남해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가 지금 미국에서 동해를 지켜내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설득했어요. 제 뜻에 공감해준 사람들 덕에 모든 것들이 결국 실현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미국인이 동해병기법안에 공감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홍 회장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꼽았다. 그는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로 치부하고 관여하지 않으려 했던 미 연방정부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정의, 역사의식 등을 강조했다. 동해 관련 문제를 통해 역사를 바로잡고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동해 문제에서 한국, 일본이 아닌 제3국의 지지를 얻으려면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했어요. 동해를 표기하는 것은 한일 양국의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는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죠.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알리는 것이 올바른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들도 사안의 중요성을 인정했어요.”

  홍 회장이 동해병기법안이 지난 3월 통과됐다고 감격스럽게 말한 대목에서는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미국 버지니아 한인회는 2년의 노력을 거쳐 지난 3월 버지니아 주에서 찬성 81표 대 반대 16표로 동해병기법안을 통과시키고 마지막 입법 과정인 주지사의 서명 단계까지 끝마쳤다. 이에 따라 7월부터 동해병기법이 발효되면서 주내 공립학교에서 채택하는 모든 교과서는 의무적으로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해야 한다.

  홍 회장은 이러한 성과를 올린 동력으로 풀뿌리 민주정치 개념을 강조했다. 풀뿌리 민주정치는 유권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처음엔 방관적 태도를 보였던 미국 정치인도 한인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지치지 않는 호소에 마음을 바꿨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이었던 고(故) 톰 랜토스(Tom Lantos) 씨가 저희 법안을 보고 연방 하원의원 70명을 설득시켜오라고 했어요. 의원 70명에게 일일이 팩스를 보내고 정치인과 연고가 있는 한인에게 대신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죠. 풀뿌리 민주정치야말로 일본의 외교력과 로비에도 저희가 이길 수 있었던 힘입니다.”

  마지막으로 홍 회장은 한국에서도 풀뿌리 민주정치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동해 문제에 분노하기만 할 뿐 실질적인 해결책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홍익인간의 바탕 하에 민간 주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한국의 민주정치의 뿌리는 깊지 못합니다. 반만년 동안 이어온 홍익인간 정신을 기반으로 한국인 스스로 시민의식을 함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한국 고유의 정신 아래 유권자들의 활발한 정치 참여가 이어져야 우리가 이뤘던 성과를 또 얻어낼 수 있을 겁니다.”

  강연을 들은 박혜진(국제대학원 석사과정)씨는 “자국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명쾌한 정치적 결과를 보여준 데 감명했다”며 “이들을 통해 풀뿌리 민주정치의 진정한 가치를 배웠고 앞으로 문화재 반환 운동 등 다른 국제적 사안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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