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없는 비정상회담, 미디어에 드러난 성차별 주시해야"

  “외국인과 수다 떠는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진지한 주제를 두고 토론해 본 적은 없었다는 거죠.”

  지난달 JTBC ‘비정상회담’ 취재 중 ‘프로그램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 패널이 이렇게 답했다. 돌이켜보니 그나마 국민들에게 인지도가 있던 외국인 프로그램은 ‘미녀’들이 ‘수다’ 떠는 프로그램뿐이었다. 비정상회담과 미녀들의 수다(미수다)는 제목만 놓고 봐도 대화의 급이 달랐다. 한때 대표 외국인 프로그램이었던 미수다는 왜 수다에 그쳤을까.

  지난 9월15일 본지에 보도된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선 이화 G6의 비정상회담’ 기획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 깊어졌다. 본사 내부적으로도 취재 과정에서 남녀비율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 결국, 여자 5명, 남자 1명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독자 반응도 좋았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외국인이 출연해 수다만 떨었던 것과는 달랐다.

  같은 외국인 소재를 놓고 드러나는 프로그램 간 차이는 남성과 여성 영역을 이분화 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산업화나 도시화에 의해 성인 남성의 공적 영역과 어린이, 여성과 연관된 사적 영역의 분리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사회에 진출하고 여성은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선입견이 이러한 분리의 대표적 예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회담으로 쳐주지만, 여성의 이야기는 수다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름답다는 조건을 붙인 제목에서도 또 다른 한계가 드러난다. 비정상회담에서 ‘잘생김’은 회담 테이블에 앉는데 필요한 조건이 아니지만 미녀로서 외국인 여성은 남성 소비자에게 시청 되는 대상에 머물러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남성이 각국을 대표하고 의견을 내세우는 주체로서 나타난다면 미수다에서 여성은 남성시청자의 취향에 맞춰진 미녀, 한국 남자친구에 종속된 객체로 등장한다. 실제로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많은 외국인 여성패널은 방송 이후 섹슈얼리티를 강조한 화보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양측 프로그램은 다루는 주제나 형식 자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비정상회담에서는 정장을 갖춘 각국 대표 남성이 토론 테이블에 앉아 각국의 결혼문화, 한국의 서열문화 등 비교적 진지한 주제를 다룬다. 반면, 미수다에서는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앉은 아름다운 외국 여성들이 한국 남자친구와 갔던 데이트장소, 한국 남자가 좋은 이유 등 주로 흥미 위주의 가벼운 소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형화된 성적 이미지는 대중에게 영향을 끼쳐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특히 비정상회담에는 여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미수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성 대상화 등의 담론에서 비껴가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여성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아마 ‘왜 제작진들은 회담이라는 형식에 여성 패널을 캐스팅하지 않았을까? 회담이라는 공적영역에 여성을 한 나라의 대표로 세운다는 것은 아직 낯설기 때문이진 않을까?’라는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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