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어가도 「돈」만 최고인가

두산전자가 낙동강에 페놀이라는 독극물을 쏟아부어 이 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천만명에 이르는 영남지역사람들의 건강, 나아가 생명을 위협하고 전국민을 경악과 분노로 몰고간 이번 사건은 비록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여 대기업의 윤리성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고, 또 그러한 파렴치한 행위들이 일상화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온 터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한해동안 825억원의 매출과 30억원의 순익을 올린 대기업이 한달에 불과 5백만원 즉 고작해야 1년에 6천만원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이웃사람들이 모두 마시는 우물물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것과 같은 행위를 자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기업이 두산전자와 다를바가 없다고는 믿고싶지 않으나 두산전자만이 유독 비도덕적이라서 그러한 행위를 자행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도 어렵다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하게 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반성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기업은 생산활동을 통하여 국민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고 근로자를 고용하고 소득을 나눔으로써 국부의 증진에 기여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인의 근면성과 창조성이 발휘되어야 하며 이윤추구는 사회공익에 기여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성장과정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정당한 사회적 평가는 커녕 오히려 부도덕과 비윤리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재벌)은 1950년대의 원초적 자본축적 기간에 혁신이나 기술개발 등을 통한 기업내부적인 자본축적을 통하여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귀속재산불하나 외국원조 등과 정부의 특혜와 결합하여 성장한 경우가 많으며 이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이나 국민경제적 기능을 도외시하게 만든 요인이 되어 대개의 대기업들이 생산적인 투자보다는 부동산, 외국저금리 자본획득, 귀금속 등의 투기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5.16에 의해 집권한 군부세력에 의해 추진된 정부주도의 고도성장정책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

정부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의 과제로 선언하고 경제개발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대기업이 고도성장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파트너가 되었으며 수출은 성장의 엔진이 되었다.

금융·세제상의 많은 특혜조치가 베풀어졌으며 일단 이러한 혜택을 받게 되면 힘들이지 않고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으며 정부의 비위에 거슬리는 기업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60∼70년대의 20년간의 수출자금의 금리와 물가상승률을 비교하면 실질금리는 계속 마이너스였다.

각종 산업의 육성자금이나 정부투자기금의 대출금 등 정책금융이자는 일반은행대출금리보다 낮았다.

이러한 정책금융, 수출금융은 대기업에 집중적으로 방출되었으며 일단 금융지원을 받은 대기업은 극단적으로 보면 금리차이만 가지고도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혁신, 창조성, 사회적 책임 등을 추구하기보다는 정부와 밀착하여 여러 특혜조치를 받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값싸고 품질좋고 안전한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를 보호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조건을 조성해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줄이고 공해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 등은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정부는 정부대로 경제성장제일주의에 심취해 물량적, 외형적 성장에만 급급해 기업의 이러한 태도를 적극적으로 비호하여 왔다.

근로자들의 요구는 거의 무시되어 왔고 공해, 환경보존 문제 역시 발설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어느정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것이므로 「잠시만」더 참아야되고 공장의 검은 연기는 성장과 번영의 상징이므로 많을수록 좋고 「약간의」공해는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물론 외형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개발도상국 중에서 경제발전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많은 후진국이 우리나라를 본받아 경제발전을 도모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이것을 위하여 지불한 댓가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을 해야 하므로 자유, 인권, 민주주의도 좋으나 우선은 유보되어야 하며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비록 불법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밀수를 해서라도 돈은 벌어야 하고 인체에 유해하기는 하나 하루종일 그것만 먹지는 않을 것이므로 공업용 재료를 식품에 사용해도 발각되지만 않으면 되고 공업용 폐수도 한꺼번에 많이 마시지만 않으면 되므로 조금씩 식수원에 흘려 버리면 그만큼 이윤은 남으니 좋다는 정도로 타락한 기업윤리. 기업의 이런 행동을 지도, 단속해야 할 공무원들도 돈과 의무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준비가 되다시피 고질화된 부패구조. 이러한 가치관의 상실이 우리가 지불한 대가이다.

돈은 매우 중요한 가치중의 하나이지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절대로 아니다.

돈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해주는 수단적 가치에 불과하고 그 자체가 궁극적 가치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는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등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파괴하면서 돈을 추구하는 전도된 가치관이 만연되어 있다.

깨끗한 물을 더럽히면서 번돈으로 다시 깨끗한 물을 사먹어야 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의 페놀사건의 일차적인 책임은 기업에 있다.

그러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해방지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정부가 공해방지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따라서 이차적인 책임은 정부가 져야한다.

부도덕한 기업과 무책임한 정부가 이번 사건을 초래한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과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기업과 정부의 윤리의식, 책임의식이 일반국민의 그것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국민의 수준이 향상되면 부도덕한 기업, 무책임한 정부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소송적, 집단적 이기주의가 횡행하는 한 이러한 사건이 재발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따라서 우선은 기업과 정부의 의식의전환과 제도 등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나 궁극적인 대책으로 전체국민의 가치관, 윤리의식 혁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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