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졸업식에 참석 안하나요
왜 졸업식에 참석 안하나요
  • 함인희 교수(사회학과)
  • 승인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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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의미부여하는 자가 진정한 주인공 될 수 있어

졸업식, “의미 없다~”인가요? 요즘은 졸업을 앞 둔 4학년을 사(死)학년이라 부른다면서요? 취업 걱정에 눈 뜨고 스펙 관리하다 잠자리에 드는 여러분들의 고단한 일상이 손에 잡힐 듯하네요. 지난 학기 전공수업 시간에 “4학년 손들어 보세요” 했더니 예닐곱 명만 주뼛주뼛 손을 올리더라고요. 출석부엔 분명 80% 이상이 4학년인데 영문을 몰라 다시 물었더니 5, 6학년들이란 답이 돌아왔답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일자리가 널려 있었고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던 시절도 있었건만,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에 88만원 비정규직 세대에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더하여 깊어가는 부모님들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졸업을 실감하며 잠시 들뜬 기분을 즐길 때가 있지요. 졸업 앨범 사진 촬영할 때요. 한 때 ‘내 얼굴은 포스트 잇이요 우리 대학은 스테이플러’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지금도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인가 앨범 사진 찍는 철이면 거금 들여 정장도 마련하고 치장도 하며 여러분만의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합니다. ‘결혼식 사진은 여러 번 찍을 수도 있지만 대학졸업 사진은 한번 뿐’이라 그토록 정성을 들이는 거라면서요?

한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정작 졸업 당일 대강당 안은 곳곳에 텅 빈 자리들이 즐비하건만, 식장 밖은 친구, 가족들과 어울려 사진 찍느라 소란스럽기도 하니 말입니다. 사진이야 언제라도 찍을 수 있지만, 졸업식은 그 날 그 시간 아니면 영영 오지 않는다는 사실, 행여 ‘의미 없다~’ 하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열 명의 고교 졸업생 중 한 두 명이 대학을 졸업하던 시기 학사모의 의미와, 대학 진학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오늘의 학사모하고 의미가 같을 순 없겠지요. 예전 대학 졸업식장의 단골 풍경은 부모님께 졸업 가운 입혀드리고 학사모 씌워드린 후 큰 절 올리던 모습이었답니다. 그 때 부모님들 얼굴을 스쳐가던 대견한 눈빛과 화사한 웃음을 여러분들은 “그 땐 그랬지” 정도로 여길 테지요.

그렇긴 해도 잊어선 안 되는 것, 변해선 안 되는 것도 있답니다. 대학 졸업식은 16년 동안의 공식 교육을 끝마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온 부모님들에게 여전히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엔 자식들 교육시킨 햇수가 100년을 넘으면 마을에서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고 하는군요.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대학을 졸업하는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성원과 심려 없이 졸업을 맞이한 친구는 없지 않을까요?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에서 부모님의 노고를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건, 대학 울타리를 떠나 어른이 되는 길에 반드시 건너야할 다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졸업생을 만나 ‘왜 졸업식에 참석 안하나요?’ 물었습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돌아온 답은 ‘000 외 몇 명’ 호명될 때 ‘외’에 속하는 자리엔 참석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대생이라면 고교 졸업식장에서 학교 대표나 학급 대표로 호명되지 않은 친구들이 별로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졸업식 날의 주인공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진정한 주인공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 잊지 말 일입니다.

지난 8월 29일 졸업식에선 새 총장님께서 졸업생 한 분 한 분을 위해 129년 이화의 역사가 오늘 여러분들의 삶에서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 더불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 금과옥조로 삼아도 좋을 지혜를 전해 주신 다음, 두 손을 머리에 올려 ♡를 그린 후 ‘사랑합니다’를 외치셨습니다.

내년 봄 졸업식에선 졸업 가운에 학사모를 갖춘 주인공들로 대강당이 가득 차길 간절히 기원하렵니다. 먼 훗날 여러분이 졸업식 날을 돌아볼 때, 대학 과정의 마지막 순간을 성실히 마무리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하길 기도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