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85%가 전권 제본 용인, 학생들은 불법 체감 못 해

  “전권 제본 가능합니다. 스프링 제본 해드릴까요, 아니면 본드 제본 해드릴까요? PDF 파일이면 더 빨리 해드릴 수 있어요.” 11일 오후 200쪽이 넘는 전공 서적 및 참고서 전권 제본이 가능한지 묻는 기자에게 교외 A 복사 업체 점원 ㄱ씨는 ‘당연한 걸 묻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전권 제본을 해주겠다고 답했다.

  B업체 또한 “이제 막 2학기가 시작돼 제본 요청이 밀려있다”며 “전권 복사는 가능하지만 분량이 많은 책은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며 전권 복사가 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무단 전권복사 행위가 교내·외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재 전권 복사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본지 취재(1395호, 2011년 3월14일 자) 이후 약 3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법 의식은 업체, 학생 모두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저작권 사용에 대한 정당한 대가 없이 교재를 전권 제본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복사 업체는 새 학기를 맞아 늘어나는 전권 복사 수요를 거절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학생들은 비싼 책값에 어쩔 수 없이 전권 복사를 의뢰한다는 입장이다.

  2일~11일 본지 취재 결과, 교내외 복사 업체 20곳 중 17곳(약 85%)은 전권 복사를 별다른 제재 없이 용인하고 있었다. 본지 1395호에 따르면 2011년 3월 조사 결과 교내외 복사 업체 16곳 중 12곳(약75%)이 전권 제본을 허용했다. 취재 이후 약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전권 제본용인 비율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러한 불법 제본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2001년 하반기부터 대학가 복사 업체 집중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단속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센터 오프라인팀이 4일 본지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404곳의 대학가 복사 업체에서 1만 2739점의 불법 복사물이, 올해 상반기 195곳의 복사 업체에서 9740건의 복사물이 불법 복사·제본 건으로 단속됐다.

  단속 팀 관계자는 “대학가에 있는 복사 업체 대부분이 전권 제본 행위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새 학기 늘어나는 수요에 따른 이득을 무시할 수 없기에 불법 제본 행위가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본을 용인하는 업체 측도 문제가 있지만 일차적으로 제본 행위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부 사용자의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복사 업체 또한 학생들의 꾸준한 제본 요청이 있기 때문에 전권 제본은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교외 C업체 관계자는 “새 학기가 되면 전권 복사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다”며 “국내 책은 단속이 심해 웬만하면 해외 책 위주로 제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복사 업체에 전권 복사를 문의하는 학생들은 비싼 전공 책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제본을 한다는 입장이다. ㄱ(과교·13)씨는 “한 학기 평균 20만원의 돈을 교재 구입에 쓰기엔 부담스러워 제본을 이용하곤 한다”며 “축소 복사를 통해 제본을 하면 들고 다니기에도 용이하고, 학기가 지나면 더 이상 책을 보지 않기 때문에 종종 전권 제본을 이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전권 제본의 불법성에 대해서도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문제다. 제본을 통해 정가 3만 5000원의 책을 2만원에 구입한 ㄴ(관현·13)씨는 “주변 친구들도 제본 책을 애용하고, 실제 업체에 제본을 요청해도 불법성에 대한 아무런 공지가 없었기 때문에 심각한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재 전권 복사는 엄연히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다. 저작권법 제30조에 따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공중의 사용을 위해 설치된 복사기기에 의한 책 복제는 불법이다. 복제된 저작물은 저작권법 제133조에 따라 수거·폐기될 수 있다. 저작권을 가진 대상이 불법복사를 한 업체를 고소할 경우 저작권법 제136조(권리의 침해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저작권법 전문가도 전권 제본의 불법성에 대해 언급했다. 법무법인 명지의 구동윤 변호사는 “저작재산권자의 출판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배포하여 이득을 취득한 자가 있는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따라 사용 정지 요청과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다”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제본 행위는 엄연한 불법 행위라고 강조했다.

  전권 복사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학생들의 전권 복사 요청을 거절하는 업체도 있었다. 기자의 전권 제본 요청을 거절한 D업체는 “많은 학생들이 새 학기를 맞아 전권 복사 제본을 문의하지만 엄연한 불법이기 때문에 책 구매를 권하거나 부분 복사를 권장하는 편”이라며 “이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정가에 판매되는 책을 무단으로 전권 복사 해주는 것은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해 전권 복사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가 제본 행위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보호과 최원일 과장은 “타인의 지식에 대한 정당한 대가 없이 무단으로 교재를 복제하는 것은 지식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며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권 제본의 불법성을 업체, 학생 모두가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구매, 중고 책 거래 사이트 이용 등 실천적인 방안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온라인에서 손쉽게 중고 대학 교재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늘고 있다. 2012년 개설된 대학 중고교재 직거래 사이트 ‘북장터’는 본교를 포함한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1만 원 이하~4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대학 교재 구매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현재 약 1만6800권이 넘는 중고 대학 교재가 등록돼 있다. 판매를 원하는 대학생은 로그인 후 간단한 교재 등록 과정을 거치면 판매 및 구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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