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4명의 감초, 그들이 알고 싶다
비정상회담 4명의 감초, 그들이 알고 싶다
  • 조은아 기자, 김지현 기자
  • 승인 2014.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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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네스 카야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 샘 오취리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 타일러 라쉬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 기욤 패트리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한국으로 게임하러 온 캐나다인, 차세대 예능 샛별 가나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유생 터키인, 사자성어를 줄줄 읊는 미국인이 한 곳에 모였다. 최근 아이돌보다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는 G11 중 캐나다 출신 기욤 패트리(Guillaume Patry), 가나 출신 샘 오취리(Samuel Okyere), 터키 출신 에네스 카야(Enes Kaya), 미국 출신 타일러 라쉬(Tyler Rasch) 4인을 8월31일 JTBC 사옥에서  만나봤다.

에네스 카야

-한양대를 졸업했는데 어떤 대학생활을 보냈나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술을 안 마시면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다는 것이에요. 터키인의 대부분이 이슬람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죠. 한양대 정보기술경영학 동기 98명이 함께 졸업했는데 그 중에서 친한 사람은 10명도 안 됐어요. 종교 때문에 술을 안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과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 외국어를 잘하는 비법은
무조건 말을 많이 하면 돼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요. 말을 하다가 틀려도 사실 남들은 신경도 안 써요. 오히려 외국인이 열심히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특하게 보일 수 있죠. 저 같은 경우는 한국어를 배울 때 지하철에서든 버스에서든 아무에게나 말을 걸었어요. 한번은 버스에서 어르신과 얘기를 하다가 어르신이 자리를 비켜준 적도 있어요. 외국인이 타지에 와서 고생한다고요. 그 어르신과 얘기를 하다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했죠.

샘 오취리

-신촌에서 대학생활을 보냈는데, 이화에 방문한 적이 있나
처음 이화여대에 갔을 때는 여자만 너무 많아서 불편하고 부끄러웠어요.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또 여자끼리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이화여대로 교환학생을 오는 남학생들이었어요. 여자가 많아서 집중하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오는 건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저는 한국 학생들이 취업이 쉬운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아직 이해가 안 돼요. 한국은 공부를 해서 아파트를 사는 것으로 꿈이 끝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인들은 큰 꿈이 없어 보여요. 20대는 젊으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큰 꿈을 꿨으면 좋겠어요. 제 최종적인 꿈은 가나의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 방송에서 말하다 보니 가볍게 비춰지지만 사실은 진지한 꿈이에요. 대통령이 돼서 가나에 학교도 짓고 가난한 사람들도 돕고 싶어요. 

타일러 라쉬

- 한국 문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화는

집단 문화가 인상적이었어요. 미국과 한국의 ‘집단’의 개념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같은 집단의 사람을 대할 때와 다른 집단의 사람을 대할 때 태도가 다른 편이에요. 자신의 집단 사람을 챙기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제가 살던 미국 버몬트(Vermont)의 집단은 조금 달라요.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서는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데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면 비키라는 뜻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라서 인사를 하기 위해 불러 세우는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라도 우리 동네에 있다면 인사를 하죠.

-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이 다른 점은

저는 한국의 학부를 경험해보지는 못해서 한국 대학원과 미국 학부의 다른 점을 말할게요. 일단 한국은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자유롭기는 하지만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미국 같은 경우는 모든 것을 알려줘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선배에게 물어보라거나 알아서 찾아보라는 식이 많았죠. 다르게 말하면 미국은 융통성이 없고, 한국은 융통성이 많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미국이 아무래도 규칙성이 세다 보니 이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기욤 패트리

-14년 전, 이화여대에서 어학당을 다닌 경험이 있는데
이화여대 어학당을 다니는 동안, 잠시 국제기숙사에서 머물렀어요. 당시 국제 기숙사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는데 항상 오르내리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하루는 폭설이 내려 택시를 타고 국제기숙사로 가고 있는데 눈 때문에 택시가 언덕에서 멈춰 버렸죠. 그래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택시 아저씨와 같이 난감해 했던 날은 잊을 수가 없어요. 한 달 후 강남으로 이사를 오면서 어학당에 제대로 못나가게 됐어요. ‘이대생’ 타이틀은 한 달 만에 끝이 난 셈이죠. 

-10년 전 쯤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날렸다고 들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왔어요. 당시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말로 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한 지 10년이 넘어서 스타크래프트는 잘 못 하지만 다른 게임은 여전히 즐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