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생활시설 ‘애란원’ 한상순 원장 인터뷰
미혼모생활시설 ‘애란원’ 한상순 원장 인터뷰
  • 공나은 기자
  • 승인 2014.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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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린 엄마를 위한 ‘애란원’이 있습니다”
▲ 애란원 한상순 원장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우리 아기를 소개합니다!’
  본교 후문 건너편 300m가량 떨어진 골목길에 위치한 3층짜리 회색 석조건물. 입구 간판엔 ‘애란원’이라고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계단 옆 벽면에 아기 사진이 가득하다. 색색의 글씨로 아기를 소개하는 글이 색 도화지를 메우고 있다. 엄마들이 직접 쓴 글이다.

  “2004년 ○월○일. 하나님의 선물인 사랑스러운 △△이가 엄마 품으로 온 날….” “낮과 밤이 바뀌었던 우리 아기가 엄마에게 50일의 기적을 선물해 주었어요. 아주 착하죠?”

  진한 모성애가 묻어나는 이 글을 쓴 사람들은 다름 아닌 10~20대 미혼모. 애란원은 미혼모와 아기에게 생활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의 안전과 자립을 돕는 미혼모생활시설이다. 이곳에서 24년째 미혼모들과 동고동락하는 한상순 원장(사복‧72년졸)을 5일 만났다.

  “애란원에 오는 미혼모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을 갖고 있어요. 아빠 없이 아기를 홀로 낳아 키울 형편이 안 되는 엄마들이 주로 이곳을 찾지요. 여기서 출산하고 몸조리를 한 뒤에 아기를 입양 보내거나, 스스로 양육할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저는 24시간 미혼모들과 같이 살다시피 하는데, 그들이 겪는 심적 아픔과 고통이 내 일처럼 절절하게 와 닿아 참 가슴이 아픕니다.”

  현재 애란원에 머물고 있는 미혼모는 약 36명. 한 해 애란원을 거쳐 가는 미혼모 수는 작년 기준으로 153명이다. 대다수가 10대부터 20대 초반 사이의 어린 엄마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우리나라의 미혼모 가구는 약 16만 6609가구로, 2000년(11만 7764가구)에 비해 약 10년 사이 1.4배로 늘었다.

  그러나 국내 미혼모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 따갑다. 양육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여전하다. 적잖은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고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리는 이유다.

  “미혼모는 낙태하는 대신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생명을 택한 사람들이에요. 그럼에도 생명을 택한 대가로 손가락질 받고 차별당하죠. 제가 직접 본 사례만 해도 셀 수도 없어요.”

  4년 전쯤, 애란원에서 지내던 미혼모가 유명 미용실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애란원의 지원으로 직업 교육을 받아 자립에 성공한 것이다. 기쁨도 잠시, 그 행복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다른 동료들의 험담과 수군거림에 충격을 받고 결국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이 엄마가 무척 믿고 의지하던 이혼모 동료가 있었어요. 같은 ‘한부모 가정’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아주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이 이혼모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험담을 하는 모습을 본 거죠. 그 배신감이 얼마나 컸겠어요. 며칠을 술을 마셨대요. 우는 아이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

  한 원장은 “같은 한부모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미혼모는 이혼모보다 훨씬 못한 취급을 받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여러 사회적 소외계층 중에서도 미혼모의 사회적 위치가 최하인 것 같다”고 했다.

  특히 한 원장은 중‧고등학교를 중퇴한 미혼모가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직업 선택의 폭이 확 좁아질뿐더러, 취업을 하더라도 생계유지에 필요한 최저비용조차 벌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애란원은 ‘나래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임신하고 일반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10대 미혼모는 이곳에서 주요과목을 배운다. 수업을 모두 이수하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다. 나래대안학교에서 10대 미혼모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들 중엔 본교생도 적잖다.
“학교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이화인들이 많이 봉사하러 와요. 학습봉사 뿐 아니라 아기를 돌보거나 주방 일도 거들어요.”

  한 원장은 미혼모가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강조했다. 특히 성에 대해 점차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미혼모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미혼모가 될 수도 있고, 내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과거 애란원을 찾은 미혼모 중에서는 이대생, 연대생도 있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앞으로 사회의 여러 분야에 진출할 이화인들이 먼저 색안경을 벗고 미혼모를 바라본다면 이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거예요. 예를 들어 한 이화인이 교사가 됐다고 쳐요. 그 반에 어떤 학생이 임신을 했어요. 그럴 때 이 학생이 최소한 공교육까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게 변화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애란원 후원 안내: ‘신한 100-030-286486 애란원(건축기금)’ 계좌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후원금은 더 많은 미혼모를 돕기 위한 애란원의 건물 확장에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