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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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둡고 긴 통로를 따라 걷는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이 통로의 끝을 나오자 통로와는 전혀 다른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 펼쳐진다. 이 같은 장면을 영화에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마포구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이다. 작년부터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열고 동진시장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하면서 이곳은 대로와 주택가 사이에서 자신만의 분위기를 가진 골목으로 탈바꿈했다.

  성미산로를 따라 5분 정도 걷다보면 ‘동진시장’이라 쓰여진 작은 간판이 걸린 1층짜리 건물을 찾을 수 있다. 간판 아래 있는 성인 1명 정도 크기의 통로는 좁고 어두워 문 닫은 가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으로는 옛날 시장과 최근 가게의 색을 모두 가진 동진시장이, 통로 끝까지 걸어 나가면 각자 개성 따라 꾸며진 작은 가게들이 나타난다. 최근 사람들이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이라 말하는 곳이다.

△복작복작 사람 냄새나는 공간, 동진시장
  골목의 중심에 위치한 ‘동진시장’은 시장의 기능을 잃은 곳을 예술가들이 살려낸 곳이다. 동진시장은 수년간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해 주변 상인들이 창고로 사용했다. 이곳을 우연히 알게 된 모자란협동조합, 덤스터, 마르쉐 세 팀은 동진시장을 현재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바뀐 현재 동진시장은 시장의 기능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공정무역, 농산물 직거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행사를 여는 워크숍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얻었다.

  동진시장은 지역사회와 연계, 공정무역 또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8월까지 열린 7일장에서 한우를 판매했던 ‘장학한우’는 ‘횡성고른기회장학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수익금의 일부를 횡성지역 아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13일 재개장한 7일장에서는 횡성친환경생산자연합의 채소시장이 열려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이어간다.

  시장 안쪽에 위치한 ‘천, 살롱’이라는 가게는 라오스 지역의 마을 주민이 직접 만든 제품을 공정무역으로 판매한다. 그 옆에 위치한 의류가게 ‘덤스터’는 걸려있는 옷의 가격표가 특징이다. 이곳의 옷은 모두 기증을 통해 판매되는 것으로 ‘기증 실명제’를 운영한다. 이 옷을 기증한 사람의 사진, 직업, 거주지 그리고 한마디를 적어 소비자에게 기증자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린다.

  이러한 동진시장의 특징은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다. 7일장을 방문한 이소영(22·서울 성북구)씨는 “평소 공정무역에 관심이 있어 찾아보다 이곳에서 열리는 행사 때문에 동진시장을 알게 됐다”며 “가게마다 가진 이야기도 의미 있고 시장 자체가 주는 매력도 있어 가끔 찾아온다”고 말했다.

  동진시장이 평소보다 더 활기를 띄는 날은 ‘토요일’이다. 연남동 주민을 비롯해 외부인까지 찾아오는 동진시장의 명물, ‘동진 7일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8월 한 달간 휴식을 가진 후 재개장한 7일장은 요일을 ‘화요일’에서 현재로 옮겼다. 7일장은 크게 재배한 농축산물을 직접 거래하는 ‘농부시장’, 함께 앉아 밥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진정식’, 연남동 거주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동진반찬’으로 이뤄져있다. 9월 재개장을 하면서 드로잉, 건강한 먹거리 등 다양한 참가팀을 포함해 그 내용이 전보다 풍성해졌다. 사람들은 가게 앞에 세워진 A4종이 크기의 소개문을 읽고 농축산물에 관해 판매자와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동진시장은 7일장을 찾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그 공간이 채워진다.

△남들과는 ‘다른’ 모습의 골목을 찾아오는 사람들
  동진시장을 들어오는 골목 끝으로 나오면 작은 골목을 따라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모여 있는 이 상점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가게와 각자 개성을 드러내는 가게 외관으로 골목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골목에 위치한 상점은 서로 달라 겹치지 않는다. 각자의 ‘테마’에 따라 상점을 구성하는 요소를 결정하고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두드러진 곳이 식당이다. 현재 이 골목에 있는 식당들은 일본 가정식, 멕시코 음식, 태국 음식, 이탈리아 가정식 등 세계 각국의 음식을 다루고 있다.
 
  또한, 상점들은 톡톡 튀는 색깔의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골목 끝에 위치한 잡화점 ‘네온문’은 핑크빛이다. 가게 문, 벽이 핑크색일 뿐만 아니라 핑크색 네온사인이 쇼윈도 위쪽 가운데에 걸려있다.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다양한 색채와 모양새의 잡화는 가게의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림책만을 판매하는 ‘책방 피노키오’는 입구와 문은 파란색, 간판은 노란색이다. 쇼윈도에는 새로 나온 그림책, 세계 각국의 그림책을 세워놓았다. 내부에 가득한 그림책과 이를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곳이 서점임을 말한다.

  골목을 찾는 사람들은 이처럼 상점들이 만들어낸 이곳만의 분위기와 감성을 골목의 매력으로 꼽았다. 이 같은 매력을 느껴 직접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기자가 골목에서 만난 사람 8명과 대화를 나누며 이곳을 온 이유를 물었을 때 8명 모두 ‘독특한 분위기’에 끌려 찾았다며 입을 모았다. 약 4평 크기 공간에서 각자의 테마를 갖고 있는 상점이 색달랐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집중하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점 역시 독특함의 이유로 말했다. 골목에 위치한 책방 피노키오는 그림책에, 그리고 네온문은 옛날 장난감만을 다룬다.

  SNS를 통해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을 알게되었다는 김정아(25·서울시 구로구)씨는 “SNS에서 게시물을 보다 우연히 이곳에 있는 상점 사진을 접하게 됐다”며 “빈티지 잡화를 판다는 점과 분홍색, 노란색 등 원색들로 꾸며진 상점 내부 모습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력을 느껴 찾아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프랜차이즈로 뒤덮인 거리, 상점에 느낀 피로감을 또 다른 이유로 말했다. 어디를 가든 같은 모습의 거리와는 ‘다른’ 분위기에 신선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송나혜(21·서울시 양천구)씨는 “소규모 가게에서는 일반 프랜차이즈에서 겪거나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좋다”며 “이런 소규모 가게를 찾다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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