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짓과 청춘팔이, 그 경계에 대하여
잉여짓과 청춘팔이, 그 경계에 대하여
  • 조윤진 편집부국장
  • 승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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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잉여짓과 현실적 청춘팔이 그 경계를 넘나들수 있어야

  ‘어디든 취업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취업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의 소원이 같아졌을까. 취업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급의 시대적 과업이 된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의 세부종족(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계층을 이르는 신조어)이라 불리는 고3, 아줌마, 군인에 이어 취준생(취업준비생)이 그 대열에 합류할 정도다.

  2013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작년 청년 고용률은 39.7%로 20대 절반 이상이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취업이 지상과제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꿈을 말한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된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자기계발서는 ‘~에 미쳐라’ 라는 제목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만큼 꿈과 도전, 그리고 열정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을 신화화하기 바쁘고 다른 사람들은 신격화된 사람들을 쫓아가기 바쁘다. 절대다수가 극소수의 신화를 바라보는 상황. 그 신화를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멘토’를 찾아다니고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맨다. 그렇게 청춘은 헐값에 팔려나간다.

  하지만 우리 조금은 솔직해지자.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바라는 성공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투입되어도 단지 몇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이를 경쟁이라 부른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젊음을 팔지 않고서 경쟁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을 위한다는 이유 때문에 수험생은 ‘재수’라는 이름으로, 대학생은 ‘휴학’, ‘졸업유예’ 등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젊음을 팔아치우고 있다. 사실상 필연적으로, 경쟁은 ‘청춘팔이’를 담보로 하는 셈이다.

  이러한 청춘팔이와 꿈팔이를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이미 개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경쟁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사회적 분위기 역시 그렇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청춘팔이와 꿈팔이는 취업 수준에 따른 소득의 격차로, 더 나아가 생활의 격차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준생에게 당장 스펙 쌓기와 스토리 만들기를 그만두라는 것은 과히 잔인한 짓이다.

  그렇다면 과연 취준생이 설 곳은 어디인가. 잉여짓(무의미한 행동을 의미하는 자조적 표현)과 청춘팔이의 경계가 그 위치다. 장기간의 청춘팔이와 꿈팔이는 우리에게 명사만을 안겨줄 뿐, 그 뒤의 삶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하지만 삶이 명사만으로 끝날 수는 없기에, 잉여짓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그 사이의 소통, 개인의 기호 등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이 모든 것들은 사소하지만 더없이 중요하다. 취업과 관련 없는 잉여짓, 취준생이 누리기에는 사치스러운 행위로 보일지언정 국토대장정과 같이 취준생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스토리’보다 의미 있는 선물이자 변혁의 가능성이 되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취업을 밀어 붙이는 세태와 확신 없이 취업에 매달리는 청춘에게 애도를 보낸다. 지나친 청춘팔이와 꿈팔이에 분노하며 젊음이 젊음다워 질 수 있길, 꿈이 꿈다워 질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