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최초 국제 테니스 심판 김효진씨 인터뷰

▲ 김효진씨 홍숙영 기자 jikkal@ewhain.net

 

 본교 최초로 국제 테니스 심판의 자리에 오른 이화인이 있다. 학부시절부터 학업과 심판직을 겸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던 슈퍼우먼 김효진(체육·10년 졸)씨다. 7년 동안 국내에서 심판 경험을 쌓으며 국제심판으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한 김 씨는 지난 4월23일~4월27일 서울에서 열린 ITF(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국제테니스연맹) 국제심판 시험에서 화이트 배지 국제 심판 자격을 취득했다. 전 세계에 약 960명에 불과한 국제 심판의 대열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심판 레벨은 국내·외 심판을 구분하고 배지는 화이트, 브론즈, 실버, 골드 순으로 높은 실력을 의미한다. 크고 작은 테니스 경기에서 공정한 저울로 활약 중인 그를 15일 만났다.

 어려서부터 고무줄놀이보다 공놀이를 좋아한 김 씨. 이러한 그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테니스 심판이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테니스 심판을 향한 첫 걸음은 학부생 시절 국내 심판 자격증을 딴 것에서 시작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운동에 그치지 않고 규칙에 따라 경기를 판정하는 데까지 관심을 가진 것이다. 누구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그는 방학 동안 심판 시험을 준비해 대한테니스협회 소속 테니스 종목 심판에 합격했다. “심판 자격증을 딴 뒤, 첫 경기를 경험했을 때 제가 선수 출신이 아니라서 내심 걱정이 많았어요. 경기 내내 빠르게 오가는 공을 놓치지 않고 판정을 내려야 했거든요.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갈리다보니 크고 작은 실수가 많았죠. 하지만 사소한 상황에 집착하지 않고 바로 다음 공, 다음 게임, 다음 경기에 집중하면서 심판에 임했고 결국 공을 잘 보는 것은 선수 생활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죠.”

 가장 보람을 느낀 기억을 묻자 김 씨는 제작년 하반기에 진행된 ‘KDB 코리아 오픈 국제 여자 테니스 대회’를 꼽았다. 국내 테니스 대회 중 규모가 가장 큰 대회다. 당시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경기장에는 호크아이(Hawk-eye, 360도로 영상을 촬영해 정확한 판정을 돕는 카메라 장비)가 10대 이상 설치돼 있었다. “이 대회에서 선수가 서브를 넣고 제가 그 서브가 라인 밖으로 나갔다고(fault) 판정을 했는데 이 선수는 그 서브가 들어왔다고 주장해 호크아이를 통해 재판정을 요구했어요. 선수가 호크아이를 신청한 후 화면이 뜰 때까지의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을 졸였지만 제 판정이 옳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정말 뿌듯했죠.”

 학생과 심판직을 병행하던 김 씨는 국제 심판이라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큰 경기에서 심판을 보고 싶다는 순수한 욕심이 든 것이다. “테니스에 대한 애정만큼 보다 큰 규모의 경기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성장하고 싶었어요. 한 매치, 한 매치를 거듭할수록 나의 눈, 판단, 제스처 등 나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테니스의 매력이죠. 예전에는 어려워했던 공이나 자신이 없었던 빠른 스피드의 공을 이제는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게 됐어요.”

 밤낮없이 국제 심판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 김 씨는 국내에서 처음 열린 시험에서 당당히 꿈을 이뤘다. 그는 4월23일~4월27일 우리나라 서울 방이동에서 4박5일 동안 치러진 ITF(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국제테니스연맹) 국제심판학교 레벨2스쿨 시험에 통과해 초보 국제 테니스 심판을 인증하는 화이트 배지를 달았다. 본교생으로서는 국제 심판 자격을 사실상 처음으로 따낸 것이다. 외국과 달리 여자 선수가 적은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성취다.

 김 씨가 국제 심판이 되기까지는 약 7년이 걸렸다. 국제 대회 심판을 50경기 이상 봐야 비로소 레벨2스쿨 시험에 지원할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이었던 김 씨는 느리지만 꾸준한 경험으로 이 조건을 채웠다. “작년에 태국에서 열린 레벨2스쿨 시험에 지원했지만 심판으로 참여한 경기 수가 부족해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어요. 방학이나 연휴 기간을 틈타서만 심판을 보는 등 학업과 심판을 병행해하다보니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심판 경기 수를 채워야 했죠. 하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개최되는 테니스 대회에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국내, 외 선수들과 심판 선생님,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러한 인맥과 경험이 모두 제 자산이 됐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오랜 기간 공들인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 김 씨는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레벨2스쿨 시험 마지막 날 한명씩 4박5일 간의 결과에 대해 듣는 시간이 있었어요. 심사위원이 저에게 시험 결과가 들어있는 황색 서류 봉투를 건네면서 그랜드슬램처럼 규모가 큰 대회에서 또 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 분이 저를 그렇게 인정해주신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김 씨는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심판 배지 중 최고 단계인 골드 배지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계획이다. “화이트 배지에 그치지 않고 브론즈, 실버, 골드 배지에까지 도전할 거예요. 차분히 한 단계씩 딛고 오르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국제 테니스 골드 배지 심판이 돼서 가장 큰 테니스 대회인 4대 그랜드슬램에서 경기를 보는 주심(chair empire)이 되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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