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발드윈 윌리스대(Baldwin Wallace University)


 추신수 선수가 거쳐 간 미 메이저리그 인디언스(Indians)의 고장.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 전 클리블랜드는 내게 그 정도 의미를 갖는 도시였다. 하지만 올 겨울 클리블랜드에 있는 발드윈 월리스 대학(Baldwin Wallace University)과 인연을 맺으며 이곳은 미국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내게 특별해졌다.

 발드윈 월리스 대학은 정확히 말하면 클리블랜드 중심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버리아(Berea)란 마을에 있다. 4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로 날씨는 불친절하지만, 늦은 새벽에 다녀도 전혀 무섭지 않은 평화롭고 인심 좋은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대학 입학 후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평안’을 맛 봤다. 교수님이 선사하는 결석 찬스를 사용해 18시간 동안 자기도 했고, 때로는 배낭 하나만 맨 채 새벽 버스를 타고 즉흥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김치처럼 매끼 먹는 감자튀김에 속이 안 좋을 때는 캠퍼스 근처 메트로 공원에 가서 조깅을 했는데,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 속을 걸으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나의 일탈은 비교적 합법적이었다. 이곳에서는 학생이 “교수님, 저 내일 수업에 불참해요. 슈퍼볼(Super Bowl, 미국 프로 미식축구 결승전)을 보러가야 하거든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에 교수님은 “그래, 잘 다녀오렴.”이라고 대답한다. 때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굳이 구차한 변명을 지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용기를 내 “저 다음 주에 D.C에 벚꽃 보러 가요.”라고 교수님께 말씀드려 봤다. 교수님은 “You are a good traveler!(넌 멋진 여행가구나)”라는 말로 나의 출타를 허용해주셨다. 스스로에 비겁해지지 않아도 되는 사제 간 솔직한 관계가 정말 좋다.

 ‘멜팅 팟(Melting Pot)’ 미국이기에 볼 수 있는 인종, 민족 간의 갈등과 이해도 몸소 경험했다. 학기 초 이곳 학보사에서 객원 기자로 활동하며 무슬림 집단을 만났다. 애초에 학보사에서 나를 객원 기자로 받아준 이유 역시 미국 내 이슈에 관한 외국인의 신선한 시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무슬림 집단은 9.11 테러 이후 미국 내 무슬림에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실제로 테러 행위를 하는 무슬림은 전체 무슬림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하나, 이들은 미국 미디어를 통해 ‘테러 집단’, ‘인권 탄압 집단’으로 일반화됐다. 이에 지역사회 사람들은 이들이 개최한 대담에 참가해 그 고충을 들어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토록 생생하게는 체감하지 못했을 이슈다.
 이화보다 1달 반가량 빠른 종강 덕분에 나는 지금 한 달간 미국을 여행 중이다.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 밤이 화려한 라스베가스, 할리우드 도시 엘에이 등 여행객이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도시를 돌았지만, 그래도 이곳만큼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 대도시에서의 생활을 왜 동경하지 않았겠냐마는 후회는 없다. 나는 가장 보통의 미국인들이 살아가는 현장, 가장 미국다운 미국을 체험하고 돌아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