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길 명예교수와 떠나는 박물관 산책

▲ 오용길 명예교수와 황선영 문화·학술부 부장(왼쪽부터)이 20일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에서 오용길 명예교수 기증특별전 '마음이 머무는 풍경'을 함께 관람하고 있다.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늘 나를 든든하게 보살펴준 이화예요. 제가 살아온 삶의 흔적인 이 작품들을 통해 이화에 보답하고 싶어요.”

 1984년 이화에 처음 몸담던 순간부터 2012년 퇴임까지. 오용길 명예교수(동양학과)는 이화에서 보고 듣고 느낀 28년간의 기록을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박물관)에 기증했다. 오 교수는 전통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낸 대표적인 한국 화가다.

 박물관은 14일~내년 1월31일(토)까지 오 교수가 기증한 동양화 작품 31점으로 기증특별전(기증전) ‘마음이 머무는 풍경’을 연다. 이번 기증전은 ▲1970년대 서민의 일상을 담은 일상에 스며들다 ▲동·서양 화법을 적절히 활용해 자연경관을 그린 자연을 품다 ▲따뜻한 시선으로 이화 교정을 바라본 이화동산에 머물다의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된다. 본지는 20일 오후2시, 박물관에서 오 교수와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며 그가 말하는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들어봤다.

 지하1층 기증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 덮인 본교 대강당이 보인다. 가로 81㎝, 세로 65cm 크기의 액자 속에 담긴 새하얀 화선지에는 겨울의 대강당과 앙상한 나무 모습이 먹선과 채색으로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본교 재직 시절인 1995년 오 교수가 ‘이화 달력’ 첫 표지를 장식하기 위해 그린 ‘이화 교정’(1995)이다. 그가 이화의 풍경을 그린 작품 제목은 모두 ‘이화 교정’이며 작품이 완성된 연도만 달리 표시했다. 그는 당시 출판부에 동양화풍에 담은 이화 교정을 엮은 ‘이화 달력’을 제안했고 이듬해 그가 그린 이화의 사계절이 달력으로 탄생했다. 그는 아름다운 교정을 누빌 때마다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파란 잔디 속에 우두커니 선 김활란 동상과 붉은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중앙도서관, 박물관 앞 노란 은행나무 등 그가 보고 느낀 이화의 4색 풍경은 고스란히 달력 열두 장을 장식했다.

 지금은 사라져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남아있는 이화의 옛 풍경도 오 교수의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다. ECC가 들어서기 전의 운동장과 김활란 동상 뒤에 있던 웅장한 소나무다. 1995년과 2004년에 완성된 위 그림들 속 이화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모습이 됐다. 그는 옛 운동장과 주변의 모습을 손짓으로 재현하며 설명을 이었다.
“ECC를 짓기 전에 있던 큰 운동장은 매년 메이데이 행사가 열리는 등 학생활동의 중심이 됐던 공간이었어요. 운동장에서 조형예술대학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무성하던 플라타너스들을 참 좋아했죠. 지금은 죽어 없어진 김활란 동상 뒤 큰 소나무도 참 멋졌는데….”

 그의 작품에는 ‘정겨움’과 ‘상상력’이 동시에 서려 있다. 작품 ‘이화 교정’(1995)에는 운동장을 둘러싼 계단에 학생들이 오손도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작품 ‘서울-이화 교정’(2011) 속에 그려진 진선미관 옆 계단에도 한 손에 책을 든 학생들이 거닐고 있다. 작품 ‘이화 교정’(1995) 속 아령당 그림은 그림의 오른쪽 한편을 커다란 나무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아령당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오 교수는 그림 속 학생들과 나무들이 사실 그의 상상으로 그려진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회화 작품에서 사실성은 물론 중요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에 학생을 그려 넣고 나무를 첨가해 그림을 좀 더 정겹고 인상적이게 연출하는 거죠. 조화로운 경치에 저해되는 요소가 있다면 과감하게 그림에서 빼버리기도 해요.”

 이화 풍경 뿐 아니라 전시장에서는 오 교수의 실경산수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 오른쪽 한 벽면에는 오 교수가 그린 자연풍경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약 3미터 길이의 작품 ‘봄의 기운’(2000)과 ‘봄의 기운’(1999)이다. 매화농원과 밭이랑을 표현한 두 작품은 실경산수의 대가인 오 교수의 화풍을 잘 드러낸다. 오 교수는 동서양의 조형관을 융합해 전통적인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주력했다. 실경산수의 전통적인 맥을 잇되 보다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시도해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흔히 말하는 ‘지(紙)’, ‘필(筆)’, ‘묵(墨)’과 서양 색감의 활용. 즉, 화선지에 붓과 먹을 입혀 나뭇가지 등의 선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양적 색채감을 덧칠하는 방법이다.

 기증전에서는 서민적 감수성이 풍부했으며 가족이 인생의 전부였던 오 교수의 젊은 시절도 엿볼 수 있다. 오 교수와 함께 둘러본 마지막 작품은 주로 그가 화단에 등단하던 시기 그렸던 초기작들이다. 공장 기계 속을 누비는 검은 고양이를 표현한 ‘기계와 고양이’와 과일을 파는 행상들을 그린 ‘삶의 장(場)’, 여름날 건어물 가게에서 책을 읽고 있는 주인과 그의 아들을 표현한 ‘하일(夏日)’과 용산역 내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그린 ‘역내(驛內)’다. ‘하일’의 건어물상 주인은 오 교수 자신이며, 먼지털이개를 들고 있는 아이는 그의 아들이다. 또, ‘삶의 장’ 속 과일을 팔고 있는 여자는 그의 아내다. “젊은 시절 내 그림 속에는 늘 가족이 있었다.” 그는 위 그림들을 설명하며 총평을 내렸다.

 예술의 전당에서 미술 강좌를 진행하는 동시에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 은퇴를 했어도 여전히 부지런한 삶을 사는 오 교수는 이 전시를 ‘가슴으로 느껴달라’고 당부했다.
“제 그림은 한 마디로 ‘쉬운 그림’이에요. 왜 이렇게 그렸을까, 작가는 그림을 그리며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등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이죠. 학생들이 내가 살아온 결과물이자 이화에 대한 감사를 담은 이 전시를 있는 그대로 관람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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