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통역사 정부희 박사 인터뷰

▲ 정부희씨가 그의 개인 연구실에서 곤충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김가연 기자 ihappyplus@ewhain.net

 

 호랑나비애벌레가 느릿느릿 허물을 벗고 흑갈색 사슴풍뎅이가 곧게 세운 앞다리를 버둥거린다. “아이고, 미안해라. 예민한 네가 허물 벗는데 시끄럽게 굴었구나. 사슴풍뎅이 이 녀석, 너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니?”

 곤충의 사소한 몸짓과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 늦깎이 곤충박사 정부희(영교·85년졸)씨다. 30대 중반에 곤충 세계에 입문해 마흔 살에 정식으로 성신여대 석사과정에 진학한 정 씨는 지금까지 약 20년 째 곤충학자로서 연구, 저술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곤충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곤충 박사 정 씨를 12일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에 있는 신발장, 냉장고, 서랍장 등의 가구는 물건들로 빽빽하게 차 있다. 곤충 표본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정 씨의 ‘곤충 집’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 씨의 연구실에는 약 1000종의 곤충 표본이 보관돼있다. “연구실은 제 땀이 가장 깊숙하게 스며있는 곳이에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부터 희귀 곤충까지 직접 채집한 다양한 곤충 표본을 한 곳에 보관했죠.”   

 그가 곤충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1981년 본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해 대학 4년 내내 영어에 매달렸지만 임용고시 낙방은 그의 꿈을 막아섰다. “교사가 돼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자라온 탓에 다른 길로 가는 방법을 몰랐어요. 하지만 하나를 접어두니 새로운 길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시골에서 자란 제게는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 동고동락 했던 자연이 제2의 길이었죠.”

 두 아들과 함께 무작정 떠난 유적 및 자연 탐사는 그를 곤충세계로 인도했다.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호기심이 강했던 그는 아들이 보는 초등학생용 전과를 들고 다니며 생소한 식물, 버섯 등을 탐구했고, 관찰 내용을 손글씨로 모두 적었다. “유적을 답사하다 보니 야생화가 눈에 띄었고 야생화를 관찰하다 보니 주변 버섯들이 눈에 띄었죠. 버섯을 관찰해보니 야생화와 버섯 옆에 항상 붙어 다니는 곤충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군요. 이때부터 곤충의 생애에 눈을 뜨게 됐어요.”

 늦은 나이에 알게 된 곤충의 길에 그의 열정은 불 타 올랐다. 그는 본격적인 곤충 연구를 위해 마흔 살에 성신여대 생물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하지만 타과 출신이라는 부담감과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그를 주눅 들게 했다. 컴퓨터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마다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곤충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자신의 목표를 되새기며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그의 주 전공인 ‘버섯살이곤충’ 연구를 본격화 했던 박사 과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들 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열정만큼은 뒤쳐지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이에 그는약 30편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곤충 연구서의 표본으로 알려진 ‘파브르 곤충기’는 프랑스 곤충들의 이야기에요. 전 남의 나라 곤충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아가는 곤충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생각했죠. 연구 활동 중에도 끊임없이 한국의 곤충을 알리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되새겼어요.”

 실제로 그의 저서「곤충의 밥상」은 한국에서 직접 관찰한 곤충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남생이잎벌레 애벌레의 생김새를 ‘몸은 밥주걱처럼 생겼고 거북선 같기도 하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여름에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오리나무잎벌레를 ‘아홉 달 동안 잠만 자는 잠꾸러기’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워킹 딕셔너리(working dictionary). 사천처럼 자연에 관한 지식을 통달하고 있다는 뜻으로, 현장과 곤충에 대해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탐사를 시작한 이래 장마 기간을 제외하곤 1년 내내 야외 탐사활동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야외 활동이 잦은 만큼 위험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인적이 드물고 덜 오염된 곳을 찾다보니 어린 아이 키 정도 크기의 뱀을 마주하는 것은 일상이다. “한 번은 비가 온 다음 날 곤충들을 채집하러 쓰러진 나무뿌리 근처에 다가갔어요. 그런데 순간 발을 헛디뎌 진흙 더미 속에 얼굴 바로 밑까지 잠기고 말았죠.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곤충과 함께 하는 일상은 늘 불확실성의 연속이지만, 그는 곤충 연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곤충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즐거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위험과 경이로움이 공존해요.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산 언저리, 건물 구석구석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보이지 않던 곤충들이 나타나곤 하죠. 그때마다 온 몸에 전율이 느껴져요. 이 전율이 제가 곤충을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탐사 과정에서 그가 직접 찍은 곤충 사진은 곤충 연구가들에게 ‘곤충이 말을 거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듣는다. 억지로 곤충을 연출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곤충 탐사 철학이기도 하다. “곤충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많은 기다림이 필요해요. 자세를 낮추고 곤충이 무얼 말하려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하죠.”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평생 곤충과 함께 하고 싶다는 그는 이화의 후배들에게 ‘곤충의 자세’를 배워보라고 조언한다. 곤충의 자세란 묵묵히 현재 삶에 충실하고 위기 상황에서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곤충은 위기 상황에 자신의 똥으로 온 몸을 더럽혀 변장하고 살아남아요. 경험에서 터득한 진리인 것이죠. 비록 지금 자신이 가는 길이 불안하더라도 끝까지 완주하세요. 언젠가 여러분의 경험이 더 큰 일을 해내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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