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글쓰기(1)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 앗제라는 노인이 살았다. 지롱드 깡촌 출신의 고아로 외항선원이 되었다가 스물한 살에 상경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연극학교 입시에 계속 떨어졌으며 지방 유랑극단의 엑스트라를 전전했다. 마흔이 넘어 파리시립역사도서관에서 용역 하나를 얻었는데 도시 재개발로 사라지는 옛 건물들의 사진을 찍어오고 수고비를 받는 일이었다. 일평생 별 볼 일 없이 살아온 그는 이 일에 재미를 붙였다. 용역이 끝난 뒤에도 그는 이십 년이 넘게 혼자 파리의 오래된 거리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 노인이 ‘근대 사진사의 보석’이라 불리는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이다. 이제는 드높은 사진예술사의 별자리에서 불멸의 명성으로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이 ‘카메라의 시인’은 예술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 앗제는 예술가인가? 그는 예술을 배운 적도 없고 생전에 예술가로 평가받은 적도 없다. 스스로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진에 내재한 초현실주의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예술의 대상을 전통적인 예술을 감싸고 있던 아우라에서 해방시킨 최초의 예술가”라고 평가된다. (발터 벤야민)

  앗제 문제(the Atget Problem)이라고 규정되는 이 미학사의 의제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글쓰기가 갖는 본질을 설명해준다. 사진은 부유하고 유동하는 시공간을 한순간의 이미지로 포착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이라는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하고 투명하며 객관적인 진실을 창조한다. 카메라라는 복제 기계가 만들어내는 이 진실은 인간의 시각적 무의식을 각성시키고 시대의 모순과 역사의 심연까지를 해독하는 무서운 예술이다. 이 때 사진을 찍는 사람의 주관적 의도가 예술의 창작이었는가, 사실의 기록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21세기는 IT 기술이 만든 매체 민주화로 인해 이 무서운 예술의 힘이 대중에게 주어진 시대이다. 스마트폰은 인터넷 연계 카메라 기능과 재현 기능, 위치 태깅 기능을 가진 ‘거대한 눈(big optics)’이다. 2013년 현재 7억1천만 명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온라인 이미지 공유 플랫폼을 이용하며 1억4천만 명이 매일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과거 사진은 사진 찍는 기술을 가진 사진사라는 장인 집단과 사진 인화 기술을 가진 사진관이라는 물리적 창구를 통해 몇 단계 과정을 거쳐 생산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로서의 사진은 말하는 것과 똑같은 실시간의 즉각성으로 제작, 편집, 전시, 공유된다. 

  우리는 욕실과 침실의 거울 앞이라는 자기애적 명상의 공간에서 셀카를 제작하고 공유한다. 거실에서 가족을 주제로 한 패밀리 스냅샷을 제작하고, 거리에서 친구와의 우정을 주제로 한 투 샷을 제작하며, 식당에서 요리 접시의 클로즈업 샷을 제작한다. “오늘날 이미지는 완전한 이동성(mobility), 편재성(ubiquity), 연결성(connection)의 환경에서 생산되고 있다.” (레프 마노비치)

  ‘에브리데이 포토그래핑’의 시대, 즉 사람들이 즉 매일매일 이미지의 상호작용으로 의미를 구축하고 일상생활을 조직하며 이미지로 사회적 문화적 경험들을 매개하면서 이미지 독해(Reading Image)는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미지의 문법과 형식, 수사학을 모르면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소통조차 어려워진다. 이미지가 희소하던 때는 이미지가 언어적 의사소통을 보조하지만 이미지가 텍스트만큼 많이 생산될 때는 이미지가 언어로부터 분리되어 자체의 자립적인 시각적 문식성(visual literacy)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의 최종 접촉면, 즉 인터페이스는 언어와 매우 유사한 자체의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아래의 이미지에는 그 자체의 주어(행동주, Actor) 동사(행동방향, Vector), 목적어(행동목표, Goal)가 있다. 이렇게 이미지에서 행동주와 행동방향이 연결되어 어떤 문장 단위의 행동을 재현할 때 이러한 이미지 벡터 패턴을 ‘서사적 프로세스’라고 한다. 반면 이미지에서 행동주가 그 이미지를 보는 청자(반응자, Reactor)와 연결되어 특정 현상에 대한 반응을 유도할 때 이러한 이미지 벡터 패턴을 ‘반응적 프로세스’라고 한다.

  이러한 이미지 벡터 패턴은 언어의 문맥에 해당하는 구성의 문법에 통합된다. 가령 <겨울왕국> 같은 영화를 보면 도입부에서 두 자매가 내밀한 대화를 하려고 할 때 안나는 항상 왼쪽에 위치하며 엘사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항상 오른쪽에 위치한다. 마법의 힘을 소유하게 된 엘사는 미지의 새로 출현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안나가 처음 한스와 만나는 장면에서 둘은 물 위의 보트에 마주선다. 이것은 둘의 관계를 떠받치는 물질적 현실적 토대가 불안정함을 보여주며 결말부에서 한스의 진정한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복선이다.

 하찮은 엑스트라처럼 보이는 눈사람 올라프는 화면에서 거의 언제나 중앙에 위치한다. 이것은 둘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부터 만들어진 올라프가 엘사와 안나 사이의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올라프이다. 

  엘사를 찾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돌아선 안나의 화면에서 오른쪽이 어둠에 쌓여 길게 프레이밍된다. 이것은 안나의 행동목표가 매우 멀고 지난할 것임을 말해준다.

 안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크리스토프의 영상은 행동방향과 행동목표를 뜻하는 오브제보다 행동주인 본인과 순록이 압도적으로 현저하다. 크리스토프의 운명이 안나에 종속적이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동일한 반응자를 응시하고 있는 겨울왕국의 포스터는 주제를 상징하는 올라프가 중심에 있고 올라프를 낳은 안나와 엘자가 좌우에 있으며 남자들은 부차적인 위치에 있다. 스토리의 위계를 반응적으로 제시하는 이미지이다. 반면 안나와 크리스토프와 순록의 시선은 셋이 한 팀을 이루는 대목부터 각기 다른 곳으로 분산되며 나열적으로 제시된다.

  현대 콘텐츠 산업은 시장 경쟁의 격화로 인해 점점 글로벌 퍼블리싱을 지향한다. 그 결과 이미지에 의한 비언어적 의미전달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미지를 정확하게 독해하고 이미지의 문법에 맞게 이미지를 제작하는 일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고유한 글쓰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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