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격표, '부르는 게 값'이 돼버린 본교 앞 상점
사라진 가격표, '부르는 게 값'이 돼버린 본교 앞 상점
  • 윤다솜 기자, 천민아 기자
  • 승인 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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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 조사 상점 80곳 중 42곳, 가격표시제 안지켜
▲ 1일 본지 기자가 서대문구청 경제발전기획단 성동규 주문관과 학교 앞 의류 및 잡화 상점을 불시 방문해 가격표시제 준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본교 앞 상점들의 불친절한 가격 표시가 소비자를 우롱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대역에서 본교 정문을 거쳐 신촌기차역까지 이어지는 이화여대로(路)의 일부 상점이 제품 가격을 아예 표시하지 않거나 일부 제품만 가격을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소비자가 상품 정가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에 불만을 표했다. ㄱ(행정·12)씨는 “학교 앞에서 신발을 사려고 했는데 동일한 제품임에도 가게마다 최대 1만원까지 가격 차이가 났다”며 “가격표도 제대로 부착돼있지 않아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ㄴ(사회·13)씨 또한 “가게 주인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제시한 가격보다 3000원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해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며 “가격표도 붙여 놓지 않고 손님에 따라 다른 가격을 받는 주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은 재작년 6월 이화여대로를 ‘가격표시제 시범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화여대로에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가격을 정확하게 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가격표시제 시범 구역 지정 취지에 무색하게 본교 앞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무법천국으로 변질돼 있었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2011년 개정한 물가안정법 제3조인 ‘가격의 표시’에 관한 현행 법률을 위반하는 행태다. 물가안정법에 따르면 매장면적이 17㎡(약 5평) 이상인 소매 점포는 판매되는 전 상품에 실제 판매가격을 제공해야 한다.

 본지는 1일 오후2시~5시 서대문구청 경제발전기획단 성동규 주무관의 지도 아래 이화여대로 내 의류 및 잡화 상점 80곳을 무작위로 불시 방문해 가격표시제 준수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 등급은 성 주무관과 상의해 4단계로 나눴다. A급은 전 제품에 정가를 표시한 경우, B급은 같은 가격의 제품을 한 군데 모아 하나의 가격표를 부착한 경우, C급은 일부 제품에만 가격표를 부착한 경우, D급은 모든 제품에 가격표를 부착하지 않은 경우다.

 조사 결과, 본교 앞 상점 중 약 52.5%(80곳 중 42곳)가 가격표시제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제품에 정찰가를 부착한 가게(A급)는 단 3곳에 불과했다. B급에 해당하는 상점은 35곳으로, 동일한 가격대의 물품을 한 군데 모아 소비자에게 가격 정보를 제시했다. C, D급에 해당하는 42곳 중 5곳은 D급에 해당하는 경우로, 모든 제품의 가격을 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가격표시제 단속 시 모든 개별 상품에 가격표를 부착할 것(A급)을 권고하고 있다. 전 상품에 일일이 가격표를 부착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같은 가격대의 상품들을 모아 하나의 가격표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 하도록(B급) 한다.  이를 위반한 상점은 최소 20만원~최대 1000만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지불해야 한다. 성 주무관은 “이대역에서 정문 앞까지의 구역은 대부분 규정을 잘 지키지만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올수록 가격표시제를 위반하는 상점이 늘어난다”며 “가격표시제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격표시제 기준을 위반한 상점은 대부분 의류 및 잡화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이들은 외부 진열 상품 및 할인 상품에만 가격표를 부착하고 있었다. 외부 진열 상품에만 가격을 표시한 한 상점 점원 ㄷ씨는 “매번 들어오는 물건이 다르고 품목도 다양한데 일일이 가격을 부착하는 것은 번거롭다”며 “일부 손님은 현금을 내면 깎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가격을 정확하게 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서대문구청의 권고 조치를 받은 상점도 있다. 서대문구청 경제발전기획단이 올해 2월 말 실시한 가격표시제 공식 점검에서 이화여대로 주변 20곳의 상점은 가격표시제 1단계 주의 단계인 ‘시정권고’ 조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정권고는 5차로 이뤄진 경고 단계 중 첫 번째 조치다. 성 주무관은 “시정권고 조치를 내려도 가격표시제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거나 경고를 받아도 일회성 눈 가리기에 불과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상점 주인과 본교 학생은 가격표시제의 엄격한 준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제품에 일일이 가격표를 달아 영업하는 한 상점주인 ㄹ씨는 “번거롭더라도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정확한 가격을 제시해 신뢰감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ㅁ(광고홍보·13)씨도 “가격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불편하며 장기적으로 보면 가게를 찾는 손님이 줄어 매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며 가격표시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화여대로 상점 거리에 위치한 신촌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이화여대로 주변 상점들이 가격표시제를 엄격히 준수하는 것은 신촌 문화거리 및 관광 특화거리 활성화의 출발점”이라며 “가격표시제 준수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상점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다솜 기자 sombly9611@ewhain.net
천민아 기자 cad93@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