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을 이유로 전형성 내걸지 말고 성소수자 향한 편견 버려야

 

  2012년 11월 국립국어원은 대학생들의 요청으로 사랑과 관련된 다섯 개 단어(사랑, 연애, 애정, 연인, 애인)의 의미를 변경하였다. 각 단어의 정의에서 쓰이던 ‘남녀’라는 단어가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1년 간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내용의 항의가 계속되자, 2014년 1월 국립국어원은 사랑, 연애, 애정 세 개 단어의 의미를 남녀가 포함된 내용으로 되돌렸다. 국립국어원은 2012년에 수정된 의미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세부적인 의미를 알기 어렵고, 전형적인 쓰임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변경하였다는 입장이다.

「사랑」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 4)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사랑의 정의에서 “어떤 상대”와 “남녀”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는 이성애를 포함하지만, 후자는 이성애 이외의 사랑은 배제한다. ‘어떤 상대’같은 포괄적인 단어의 선택은 어느 한 쪽을 배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옹호하려는 목적도 없다. 다만 보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동성애에 대한 ‘옹호’로 해석하여 다시 남녀 간의 사랑으로 한정짓겠다는 것은 명백한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며, 차별이다.

  그렇다면 국립국어원이 의도한 세부적이고 전형적인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의 종류는 기준에 따라, 분류하려는 사람에 따라 끝도 없이 나뉜다. 분류의 기준이 사랑을 하는 두 사람, 즉 행위자 한 가지라면 동성애와 이성애 등 비교적 적은 개념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그 기준이 행위 자체에 놓여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들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사랑은 다시 이타적 사랑, 동료적 사랑, 낭만적 사랑, 실용적 사랑, 유희적 사랑으로 나뉜다. 또한, 같은 심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제시한 Sternberg는 사랑을 낭만적 사랑, 동반자적 사랑, 얼빠진 사랑으로 나누었다. 즉, 사랑에 대한 세부적인 정의가 목적이라면 동성애와 이성애로 분류하는 것 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호한 것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의 정의를 이성 간의 관계만으로 한정짓는 것은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한편‘전형적’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부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또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전형적인지, 즉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지는 분명히 자의적이다. 또한 사랑을 떠올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상으로 남녀의 모습을 떠올릴지언정 본질은 그들의 성별이 아니라 마음이나 행위에 있다. 아울러 전형적이라는 것이 다수의 선택에 달려있다면 세부적인 것과 전형적인 것은 병립할 수 없다. 세부적이라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대 다수의 전형이 아닌 그 이외의 것도 고려하기 때문이다.

  늘 이러한 억압에 부딪힐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성소수자를 억압하려는 그들은 우리와 공존하기를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약간의 여지도 두기를 싫어한다. 사소한 문제부터 하나 둘씩 어떻게든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해 보다 강하고 신속하게 움직인다. 지난 1년 간 쉬지 않고 꾸준히 항의를 해왔다는 것이 대단하고도 놀랍게 느껴진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신과 다른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혹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에 대한‘불안함’인 것 같다. 분명히 존재하는 것에 대해,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억압하려는 움직임이 존재를 알리고 공존하려는 움직임보다 중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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