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로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았다. 이에 세계 곳곳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을 각색‧재공연하며 탄생 450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현세대까지 교훈을 준다. 시대를 초월한 셰익스피어 원작의 치명적인 유혹에 전 세계는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해 선보이고 있다. 영화전문데이터베이스사이트 IMDb(The Internet Movie Database)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및 드라마는 모두 997편이다. 본교에서 ‘문학과 영화’ 과목을 강의하는 이형숙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대가 지나도 공감할 수 있는 교훈이 담겨있어 현재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된다”고 말했다.

  본지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희곡 37편 중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각색한 ‘햄릿 2000’, ‘로미오+줄리엣’,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중심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과 450년을 뛰어넘은 청춘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확인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등장한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던 햄릿은 영화 속에서 현대 소비사회의 소외된 한 인간으로 각색됐다. 원작의 주인공이 현대 사회의 문물로 인해 고통받는 비극적인 인물로 변화한 것이다. 운명의 결과로 생기는 인간의 고통을 담는 연극 형식인 ‘비극(Tragedy)’에 따라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도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개인이 겪는 사회문제가 결국 개인의 내적 갈등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비극은 사회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Michael Almereyda)는 영화 ‘햄릿2000’에서 덴마크 왕국이 아닌 미국 뉴욕(New York)을 배경으로 한다. 시기와 배경을 현대 사회로 변화시켜 셰익스피어의 비극론을 풀어가는 것이다. 이 작품은 권력의 중심이 과거 왕궁이었던 것에서 현대 자본으로 변화한 것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뉴욕을 가득 메운 전광판 광고를 영화 초반에 부각한다. 원작의 덴마크 왕국은 21세기 다국적 대기업 중 하나인 ‘덴마크’로, 햄릿이 살던 엘시노어 성(城)은 뉴욕 시내에 위치한 고급 호텔로 재탄생했다.

  현대 자본주의는 청춘남녀의 사랑을 갈라놓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rmann)의 영화 ‘로미오+줄리엣’은 원작의 배경인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모티브를 따온 가상도시 ‘베로나 비치’에서 시작된다. 이 가상도시 한가운데 몬태규 가(家)와 캐플릿 가(家)의 큰 빌딩이 서 있다. 큰 빌딩이 상징하는 자본은 현대사회의 권력이며 이 권력은 결국 로미오(Romeo)와 줄리엣(Juliet)의 사랑에 걸림돌이 될 것임을 나타낸다.

  셰익스피어 각색 영화는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소외된 인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햄릿2000’은 자동차, 카메라, CCTV 등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도구들을 미장센(mise-en-scéne, 카메라 앞에 놓이는 모든 요소)으로 내세운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영상제작을 즐기는 햄릿은 그는 스스로 대인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기술에만 빠진 고립형 인간이다. 이 교수는 “영화 ‘햄릿2000’은 매체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며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항상 매체 속에서 느끼고 있음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원작에서 햄릿을 가두던 감옥이 덴마크 왕국이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CCTV가 그의 감옥이다. 원작에서 햄릿이 자신에게 묻는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이 영화 ‘햄릿2000’에서는 미디어 시대 매체의 존재에 관한 물음으로 변화한다.

△16세기 셰익스피어 극의 청춘이 현대사회의 청춘과 만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청년을 가리키는 X세대. 이는 1990년대 중반 청춘을 표현하던 이름이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을 형성한 이 청춘들은 16세기 셰익스피어 극을 원작으로 한 각색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로미오+줄리엣’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빠른 편집, 원색의 색감과 함께 힙합, 록음악이 깔린다. 등장인물은 가죽점퍼를 입고 몸에 문신한 펑크족이다. 방황하는 10대의 모습은 16세기의 원작과 닮아 마치 원작의 사랑이 하이틴로맨스로 완성된 것처럼 느껴진다.
뮤지컬 연출가 이종석씨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세기의 로맨스로서 사랑받는 이유를 “어린 남녀의 조건 없는 저돌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각색한 미국의 영화감독 길 정거(Gil Junger)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1990년대 10대의 감수성을 나타낸다.
미국 시애틀(Seattle)의 한 고등학교로 무대를 옮긴 셰익스피어 원작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주인공인 캐서리나와 비앙카가 다니는 학교에는 커피 중독자 집단, 마약 집단, 맥도날드를 좋아하는 집단 등 10대들이 형성하는 다양한 무리가 등장한다. 주인공 비앙카 또한 “베네통은 좋아하고 프라다는 사랑한다”라고 외치며 명품을 좋아하는 10대 청소년의 모습을 나타낸다. 가짜 상표 옷을 입었다고 무리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모습은 1990년대 미국에서 볼 수 있던 모습이다. 뮤지컬 연출가 이종석씨는 고전 작품이 재해석 될 수 있는 이유를 ‘고전문학의 보편성’이라고 설명한다. 이 연출가는 “고전문학에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친구들에게 멋지게 보이려 애쓰고 사랑을 고민하는 비앙카의 모습은 셰익스피어의 극 속 주인공의 고민과 비슷하다. 10대들은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작가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가부장적이라고 비판하며 플라스(Sylvia Plath)와 같은 여성작가의 소설과 여성밴드를 좋아하는 캐서리나는 사랑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 남학생들과 데이트하고 싶어 하는 비앙카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한다. 10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16세기 셰익스피어 작품 속 청춘의 사랑에 관한 고민이 현대사회 청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은지 기자 ejjeon@ewhain.net

 

영화소개

햄릿2000(Hamlet, 2000)
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Michael Almereyda)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2000년 뉴욕을 배경으로 재해석한 작품. 주인공 햄릿의 아버지이자 덴마크계 기업의 회장이 시체로 발견된 후 햄릿은 괴로워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상실감을 느낀 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게 복수하기로 한다.

로미오+줄리엣(Romeo+Juliet, 1996)
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몬태규 가(家)와 캐플릿 가(家)간의 가문 싸움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캐플릿 가의 파티에 몰래 참석한 몬태규 가의 로미오는 캐플릿 가의 줄리엣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집안의 싸움이 계속되면서 둘의 사랑도 위기를 맞는다. 줄리엣의 사촌 티볼트를 죽이게 된 로미오는 베로나에서 추방당하게 되고, 줄리엣 부모를 피해 수면제를 먹고 죽은 것처럼 가장한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
감독: 길 정거(Gil Junger)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모티브로 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첫째 딸 말괄량이 캐서리나에게 구혼자가 생겨야 둘째 딸 비앙카가 이성 교제를 할 수 있다는 규칙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캐서리나가 남자에게 관심 없어 하자 동생인 비앙카는 언니의 결혼 상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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