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ㄱ(수학·12)씨는 ‘기본러시아어’ 첫 수업 시간에 당황스러웠다. 몇몇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러시아어를 이미 배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를 처음 배운 ㄱ씨는 이 학생들의 높은 실력에 첫날부터 위화감을 느꼈다.

 #2 외국어고등학교(외고)를 졸업한 ㄴ(영문·11)씨는 스페인어를 전공했지만 ‘기본스페인어’를 수강했다. 수업을 듣기위해서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은 척을 해야 했다. 그는 “학점을 수월하게 딸 수 있다는 생각에 수강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기본중국어를 들으려했지만 이미 그 언어를 배운 학생들이 있어 학점을 잘 받지 못할까봐 생각에 고등학교 때 전공이었던 스페인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이 제2외국어 수업을 학점 취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해당 언어를 배웠음에도 기초 수업을 듣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보다 자신이 이미 배운 언어 수업을 수강하는 것이 좋은 학점을 받기에 수월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국가 거주 경험자, 외고 졸업생 중 해당 언어 전공생 등으로 이뤄진 이 학생들은 기초 문법, 독해 등에 능통하지만 이러한 이력을 숨기고 수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당 언어의 문법·독해·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고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제2외국어 수업 개설 취지와 어긋나는 현상이다.

  본교는 제2외국어를 기초교양으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다. 본교 제2외국어 수업은 ▲독일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로 이뤄져 있다. 2014학년도 교육과정에 따르면 인문·사회계열, 스크랜튼대학은 제2외국어를 필수로, 자연·예체능 계열은 고급영어와 제2외국어 중 선택해 이수해야한다. 학과에서는 수강편람 비고와 강의계획안의 수강대상 안내를 통해 이미 해당 언어를 배운 학생들에게 해당 과목의 신청을 자제할 것을 공지하고 있다.

  이같은 사전 공지에도 일부 학생들은 과거 이력을 숨기고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학생과 교수진은 심리적 피해, 수업 방해 등 이들의 수강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언어에 능통한 수강생이 다른 학생들의 의욕을 꺾거나 불안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작년 중국어1를 수강한 이수민(불문·13)씨는 “이미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수업을 같이 듣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중국어 수업을 수강하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이미 어휘력이 뛰어난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다는 점이 억울했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부 교수진도 이 학생들이 수업 분위기를 저해하곤 한다고 호소했다. 일본어 수업을 진행한 ㅁ강사는 “이미 일본어를 배웠다는 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수업에 집중하지 않기도 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어 수업을 진행하는 조혜진 강사는 “기존에 배운 학생들 중 학습 분위기를 흐리거나 다른 사람의 의욕을 꺾는 전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력을 숨긴 수강생들은 높은 학점 취득을 위해 이와 같은 불만을 외면한다. 이미 배운 내용을 수강하면 공부가 수월할 뿐 아니라 높은 학점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재작년 기본프랑스어를 수강한 ㄷ(기독·12)씨는 “이미 배운 언어로 기본 수업을 들으면 다른 과목에 비해 A+를 받기가 쉽다”며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의 난이도는 다른 과목에 비해 조금 공부해도 A+가 나올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1년 거주한 ㄹ(영문·11)씨는 “좋은 학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A+를 취득할 확률이 높은 기회를 날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학과에서도 피해 방지를 위해 자구책을 마련해 운영 중이나 이마저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조사는 이와 관련된 출신 고등학교 등을 묻는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거나 발음을 시켜보는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지만 일부 학생들은 거짓으로 답변하는 등 이를 피해가기 때문이다. ㄴ씨는 설문조사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는 사실을 감췄다. 그는 “출신 고등학교에서 스페인어과를 졸업했지만 설문에는 다른 학과에서 공부했다고 적었다”고 말했다. ㄹ씨 역시 같은 생각으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살다온 경험이 밝혀질 경우 수업을 수강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일본어를 배운 경험이 있는 학생을 조사할 때 손을 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부 교수는 자체적으로 수강대상자 제한 기준을 강화하기도 한다. 조 강사는 매학기 강의계획안을 통해 그가 진행하는 수업이 기초수업임을 알리며 수강 제한 대상을 안내한다. 수강 제한 대상은 ▲외고 전공자 ▲외국에서 3개월 이상 거주 및 학습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조 강사는 수강을 금지한 학생이 수업을 들을 경우 B학점 이상은 받을 수 없다고 공지한다. 그는 “이러한 제한 후 기존에 배운 학생이 수강하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수강신청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자 학교 측은 자체 제한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무처 교무팀 관계자는 “안내된 수강 대상보다 높은 수준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학생의 수강 신청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어렵다”며 “학과 차원에서 신청을 자제하라 안내하고 있으며 신청 여부는 학생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를 마련해 이를 방지하는 대학도 있다. 한국외국어대는 제2외국어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외국어능력시험인 FLEX시험 성적이 701점 이상(1000점 만점)일 경우 해당 언어의 실용외국어1, 2(각 2학점)를 합산해 총 4학점을 인정한다. 한국외국어대 관계자는 “실용외국어는 필수적으로 들어야하는 수업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해당 언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그 학생들에게는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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