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청, 청록파 박두진 시비 21일 세워

▲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에 세워진 박두진 시인의 시비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시 ‘어서 너는 오너라’(1946), ‘해’(1949)로 유명한 혜산 박두진 시인(1916~1998)의 시비(詩碑)가 21일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 자락길에 세워졌다. 시비는 박 시인의 둘째 아들인 박영조씨의 제안으로 작년 연말 착공된 것이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1946년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시인의 시집 「청록집」에 실린 ‘푸른 숲에서’다. 서대문구청은 ‘푸른 숲에서’가 선사하는 분위기가 안산 자락길과 유사하다고 판단해 시비에 새기기로 했다.

 ‘푸른 숲에서’는 숲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생명을 노래한 시다. 정끝별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푸른 숲에서’는 ‘찬란한 아침’, ‘영롱한 이슬’ 등의 구절이 환기하듯 푸른 숲을 걸으며 숲이 선사하는 동화적 몽상을 펼치고 있는 시”라며 “마지막 연의 ‘나의 청산’과 ‘나의 하늘’로 수렴되는 숲이 지닌 당당한 정신적 가치와 건강한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박 시인과 서대문구의 깊은 인연이 이번 시비 설립을 이끌었다. 박 시인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서대문구 연희동에 살며 본교와 연세대 교수로 지냈다. 그는 1970년~1973년 본교 인문과학대학(당시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를 지내며 시 창작, 한국 현대시 강독 등을 가르쳤고, 이후 1973년부터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정교수로 재직하며 1981년 정년퇴임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구민들이 안산 자락길을 거닐며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시를 읽으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안산 자락을 에두르며 조성된 길을 거닐며, 시의 마음과 푸른 숲의 기상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안산 자락길에 박 시인의 시 외에 박목월, 유치환, 윤동주, 이육사 등 여러 시인의 시비도 설치돼 있어 ‘문학이 어우러진 힐링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청록파: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 추천으로 시단(詩壇)에 등단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시인을 가리키는 말.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 시를 써온 세 시인은 1946년 시집 「청록집」을 함께 펴내면서 청록파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푸른 숲에서 / 박두진

찬란한 아침 이슬을 차며
나는 풀숲 길을 간다.
영롱한 이슬들이 내 가벼운
발치에 부서지고,
불어오는 아침 바람 -산뜻한
풀 냄새에 가슴이 트인다.

들장미 해당꽃
시새워 피고,
꾀꼬리랑 모두 호사스런 산새들이
자꾸 나를 따라오며 울어준다
머언 산엔 아물아물
뻐꾹새가 울고-,

- 금으로 만든 날갯죽지...... 나는 이런 풀숲에 떨어졌을 금
날갯죽지를 생각하며, 옛날 어릴적 동화가 그립다
쫓겨난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 -
 
떨기 고운 들장미를 꺾어
나는 훈장처럼 가슴에 달아본다.

흐르는 물소리와
산드러운 바람결

가도 가도 싫지 않은
푸른 숲속 길.

아무도 나를 알아 찾아주지 않아도
내사 이제 새삼 외로울 리 없어...

오월의 하늘은
가을보다도 맑고,

보이는 곳은 다아 나의 청산
보이는 곳은 다아 나의 하늘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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