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화와 교양 이념(1)>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점점 더 증가하는 정보를 우리는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지식의 단편화와 파편화에 대항할 방법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우리 대학사회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답을 모색해왔다. 문화학 전공 설립, 교양교육 강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노력 등. 그러나 해답 모색은 또 다른 비판적 토론을 양산하게 마련이다. ‘통섭’ 개념을 둘러싸고 어떤 학문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 이어지고, ‘인문학강좌’ 붐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 및 위기의식이,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자연과학의 부상으로 기존의 '하나이던 문화 one culture'가 '두 개의 문화'로 분열됨에 대해 지식인들이 느꼈던 위기의식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주목할 것은 현 독일 지식인들이 18세기 이래 전개된 ‘교양 Bildung’에 대한 토론에서 이 위기를 극복할 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답들이 여전히 시의성을 지니는바, 종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교양만이 “정보들에 대항하여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초기에 혁명의 이상에 열광하던 독일 지식인들은 혁명이 폭력을 동반하며 공포정치로 변하자 등을 돌리게 된다. 300개 이상의 영방(領邦)으로 분열되어 정치적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독일이 프랑스의 ‘정치적 혁명’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점진적인 진화, 곧 ‘정신의 혁명’, 예술교육을 통한 ‘미적 혁명’이었으며, ‘교양’이 바로 그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그 결과 독일은 국가의 정치적 위기를 학술과 문화 부흥으로 극복한, 세계사에서 매우 드문 실례를 남기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독일문학사에서 질풍노도,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아우르는 ‘괴테시대(1770-1830)’에 가장 활발히 전개된 ‘교양’ 개념을 돌아보고자 한다.  

 독일의 ‘빌둥 Bildung’ 개념은 흔히 번역되는 ‘교양’ 보다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동사 ‘형성하다, 만들다 bilden’의 명사형 ‘Bildung’은 전인적 인간형성의 의미로 쓰이는데, 계몽주의와 루소의 인간의 ‘완성가능성’ 기획에 기원을 두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이래 기독교를 포함 면면한 서구사상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독일 교양 이념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교양/인간형성’의 전제이자 출발점은 교체불가능한 독자성을 지닌 개인의 유일성이다. 개인은 유일하기에 자신만이 지닌 모든 힘과 능력을 개발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진력해야만 한다.

 이러한 개인은 ‘스스로 자신을 형성 Selbstbildung’ 해 가야 하지만,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 즉 그는 “연습장”인 “자기 밖의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자아를 완성시켜 갈 수 있다. 독일의 전형적인 장르로 인정받는 ‘교양소설’은 바로 개인이 사회와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고 형성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학시대>(1795/96)가 대표적 예이다.

 여기에 ‘인류’라는 개념이 더해진다. 이는 ‘인류’가 스스로 ‘역사’를 창조해가는 주역이라는 근대적 역사관의 생성과 연관이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의 완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괴테는 “오직 모든 인간이 모여 인류를 만들며, 오직 모든 힘들이 모여 세계를 만든다.”라고 쓰는가 하면, 빌헬름 폰 훔볼트에 의하면 ”가장 위대한 인간이란 인류 개념을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위대하게 펼치며 표현하는 자이다.“

 더 나아가 교양은 이후 정치사적 사회사적으로도 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시민계급의 사회적 정체성 정립과 사회적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즉 ‘교양시민계층’은 ‘교양’의 표지 하에서 계급의식을 발전시켜 귀족들의 특권과 교회의 세속적 지배에 대해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특히 독일적 특징으로 꼽아야 할 것이 ‘교양’에서의 문학과 예술의 역할이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이 시대의 근본정신을 “창조에의 의지 Wille zur Gestaltung”라고 표현하며, 이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로 괴테를 꼽는다. 

 온 세계를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로서 파악하는 헤르더의 범신론적 세계관과 그의 ‘교양’ 이념의 영향을 받은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 재상으로서 국가에 대해서도 그러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국가의 모든 부분들이 상호협력을 통해, 즉 혁명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서 국민의 안녕을 위한 조건들의 점진적 개선을 가져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제가 성숙하고 자유로운 시민으로의 교육으로서, 칸트가 말하듯이 개개인이 독자적인 사고를 할 용기를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괴테와 함께 독일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쉴러도 “정치적인 영역에서의 모든 개선은 인격의 고양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교양 이념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집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한 서한집>(1795)에서 쉴러는 현실적 억압에 매어있지 않은 자유로운 예술만이 역사적 현실에 대한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며, “보편적인 행복의 조장”을 위해 문학과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쉴러는 시민들에게는 불멸의 모범적 작품들을 읽을 것을, 시인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열악한 환경에서 떨치고 일어날 것을 과제로 주고 있다.

“그대의 세기와 함께 사십시오, 그러나 그 세기의 피조물이 되지는 마십시오. 그대의 동시대인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십시오. [...] 그들이 향유하는 것에서 자의와, 경박함, 야만성을 몰아내십시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당신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또한 그들의 행동에서, 마침내는 그들의 성향에서까지도 그러한 것들을 몰아내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그러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들을 고귀하고 위대하며 재기 넘치는 형상들로 에워싸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을 훌륭한 것의 상징들로 둘러싸십시오. 가상이 현실을, 그리고 예술이 자연(본성)을 극복하게 될 때까지.” (미적 교육 서한집, 아홉 번째 서한에서)

 고전주의 프로그램의 표현이기도 한 위 인용문에서 우리는 예술이 역사의 밖에 있지는 않지만, 역사가 바뀌는 가운데 인간의 도덕적 존엄을 지킬 과제를 부여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정보의 포화가 인간성 상실을 가져온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독일 괴테시대의 ‘교양 이념’은 이 모든 정보들이 바로 우리 개개인과 학자들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인간성 고양으로,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인류, 보다 나은 사회와 세계를 만들어 갈 가능성을 담지한 정보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결코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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