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이화여성위원회(이하 여위)는 제 15회 페미니즘 문화제 ‘이제 말해 보지’를 학생문화관에서 진행했다. 문화제는 여성의 성기에 덧씌워진 금기를 이야기해 보고자 기획한 전시였다. 포스터와 전시는 여성의 성기를 추상화한 그림과 글씨를 사용했다. 전시는 순탄치 않았다. 문화제 시작 전날부터 학생처 직원이나 경비 노동자 분에 의해 포스터가 떼어지는 일이 발생하더니, 문화제를 시작한 날에는 양성평등센터에 문화제가 성희롱으로 신고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위의 전시가 행인들에게 시각적인 성희롱을 했으며, 따라서 전시물을 즉각 철거하라는 요구였다. (이 사건은 최근 양성평등센터 성희롱심의위원회를 통해 시각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지만 성희롱은 아니라는 요지의 결과문을 받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겨울, 여위는 섹스의 정의에 대한 참여형 게시판을 학생문화관에 설치했다. 섹스는 개인에 따라 다양한 양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섹스에 대한 편협한 시각에서 탈피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손잡기’, ‘키스’, ‘가벼운 애무’ ~ ‘삽입’ 과 같은 항목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견을 표시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번 사건처럼 신고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게시물 전체에 큰 글씨로 ‘당’ '장' ‘떼’ ‘어’ ‘주’ ‘세’ ‘요’라고 쓰이거나, ‘불쾌하니 당장 떼어주세요. 자신의 집 앞에 남성 성기 모형이 있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라는 포스트잇이 붙기도 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여성의 성기 혹은 섹스라는 단어를 봤을 때 느껴지는 불쾌감 자체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같은 주제를 놓고 어떤 사람은 즐겁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익숙하지 않아 주저하기도 했으니까. 평소에 자연스레 이야기하지 못하던 주제였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공감했다. 하지만 불쾌감의 문제로 여위의 전시를 축소하거나 변형하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쾌감과 불쾌감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 때문에 타고나는 본능적인 무언가로 여겨지기 쉽지만 사실 학습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본능적으로 쾌와 불쾌를 유발하는 것도 있겠다만, 이 경우에 대해서는 학습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각 문화권에서 느끼는 혐오의 정도는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여성이 쾌락을 느끼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 할례를 강요하지만 많은 나라들은 할례의 반인권적 면모를 혐오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여성이 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는 적잖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 단순히 이것뿐만이 아니다. 동성애나 인종,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쾌하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변두리로 밀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앞으로도 무엇을 하든 불편하다는 반응을 필연적으로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그 불쾌감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경시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불쾌감이라는 이유로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할 필요를 느낀다. 여성주의의 중요한 목표는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것, 즉 공론화되지 않은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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