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앞 원룸, 고시텔 등 10곳 소음 측정한 결과 공장 내 기계 소음과 비슷해

▲ 20일 대현동에 위치한 여성전용고시텔에서 측정한 벽간 소음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 옆집 소음에 불편을 토로하는 메모가 창천동 소재의 한 원룸 문 앞에 붙어있다. 김가연 기자 ihappyplus@ewhain.net
▲ 출처=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횡간소음 수치는 본지 측정 결과)

 

  본교 정문에서 3분 거리 원룸에 사는 ㄱ씨는 옆방 주인이 바뀐 이후 한 번도 편안히 잠을 자본 적이 없다. 옆방에서 들리는 온갖 잡음이 그의 신경을 곤두세우기 때문이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부터 통화 소리까지. 조용한 새벽에는 옆방 주인이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는 소리까지 들린다. ㄱ씨는 “옆방에 여러 사람이 놀러 오면 목소리만으로도 몇 명인지 알 수 있다”며 “옆방도 소리만으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거라 생각하니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벽을 통해 들려오는 옆방 너머 소음에 자취생 등이 고통받고 있다. 방음시설이 취약한 원룸, 고시텔, 오피스텔 등에 사는 학생들이 같은 층 내 벽을 사이에 두고 발생하는 ‘횡간소음(橫間騷音)’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기 때문이다. 층간소음(層間騷音)이 큰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요즘, 원룸·하숙 등 자취촌이 형성된 대학가에는 횡간소음이 또 하나의 고질병으로 대두되고 있다.

  본지는 19일~20일 본교 앞 원룸, 고시텔, 오피스텔, 아파트 등 10곳과 본교 기숙사 한우리집에서 들리는 횡간소음을 측정했다. 학생들이 주로 기거하는 오후7시~자정에 찾아가 소음 측정기로 그 값을 기록했다. 실험 결과로 나온 수치는 국립환경과학원 소음기준표와 비교했다.

  측정 결과, 원룸과 고시텔의 소음은 공장 내 기계 소음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벽 너머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평균 80dB 정도로 공장 내 기계 소음(80~90dB)과 비슷한 수치였다. 가장 큰 소음은 방문 닫는 소리(82dB)로, 그 뒤로는 통화소리(81dB), 도어락 열리는 소리(79dB), 샤워하는 소리(76dB)가 뒤를 이었다. 이는 차량이 많은 도로의 인도에서 발생하는 소음(75~80dB)과 맞먹는 값이다. 본교 앞 원룸형 하숙집에 사는 ㄴ(국문·10)씨는 “옆방 사람이 통화하면 전화기 속 목소리까지 다 들린다”며 “본적도 없는 앞방과 양 옆방의 부모님이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원룸, 고시텔보다 비교적 시설이 좋은 오피스텔과 아파트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대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소음을 측정한 결과 복도에서 들리는 소음은 81dB로 지하철 내부 소음(75dB), 자동차 평균 소음(80dB)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세탁기 돌리는 소리, 청소기 소리 등 벽을 타고 넘어오는 생활소음은 지극히 일반적이었다. 본교 정문 왼편에 위치한 두산아파트에 사는 ㄷ씨는 “조용한 새벽에는 옆집에서 콘센트 꽂는 소리,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말했다.

  본교 앞뿐만 아니라 신촌, 대학로 등 타 대학 자취 촌에서도 횡간소음은 공공연한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로에 사는 성균관대 정낙영(신방·08)씨는 “옆집 주인이 도어락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와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항상 선명하게 들린다”라고 말했다. 성북구 안암동에 사는 고려대 이유진(보건행정·10)씨는 “늘 친구들을 데려와 수다를 떠는 옆방 학생과 몇 번 싸운 적이 있어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건축법적 규제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좋은집 건축사사무소 김향희 건축사는 “세대 간 경계벽은 법적으로 20cm 이상으로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옆방 소음이 적나라하게 들린다면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거나 규정이 생기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양춘 건축사무소 박양춘 건축사는 “경계벽에 대한 규정이 생기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규제가 어렵다”며 “일률적으로 재건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현행법에 따라 건축물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교 기숙사 또한 횡간소음이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오후10시~자정 사이 화장실, 쉼터, 새참방(간이 부엌)과 붙어있는 호실에서 소음을 측정한 결과 평균 52dB이 나왔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층간소음 피해인정 기준을 주간 40dB, 야간 35dB로 지정한 바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방안에서 들리는 소음 중 쉼터에서 대화하는 사생들의 목소리가 62.3dB로 가장 컸고, 샤워 소리(53.1dB), 변기 물 내리는 소리(50.1dB), 사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소리(43dB)가 그 뒤를 이었다. 기숙사 사생 김홍비(인문·14)씨는 “매일 자정이 넘어 옆방에서 게임을 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 사생회에 제보한 적이 있다”며 “소리가 크게 들릴 때마다 이야기해도 조용해지는 건 그때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건물 복도나 방문 앞에 경고 쪽지를 붙이는 방법이 최선인 것. 몇몇 원룸, 하숙집 입구에는 ‘복도에서 통화하지 말라’, ‘친구 초대를 자제해 달라’ 등 주의를 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기숙사 내부에도 샤워실 앞, 쉼터 앞문에 종종 ‘통화하지 말라’,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를 줄여달라’ 등 기숙사 사무실에서 붙인 공지 또는 학생 자체적으로 붙인 쪽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교 근처 원룸, 하숙에 사는 이수민(수학·12)씨는 “원룸에 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쪽지를 붙이는 것은 이미 관행이 됐다”며 “시끄러울 때마다 일일이 찾아가 항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뚜렷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 상황은 원룸, 하숙을 운영하는 집주인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민원이 들려오면 직접 소음이 들리는 방에 찾아가 주의를 주거나 방문 앞에 메모를 남기는 수준이다. 본교 후문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ㄹ씨는 “서로 조심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서대문구 측은 횡간소음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대문구 건축민원관리팀 김재호 주무관은 “건물주가 임의로 건물을 구획한 불법 건물일 경우 소음이 심할 수 있지만 신촌에 있는 수만 세대를 구청이 일일이 감시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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