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18일에 열린 이대학보 창간 60주년 기념식에서 <이대학보>의 명예를 빛낸 기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이대학보인상’이 수여됐다. 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인 김선욱 총장이 시상자로 나서 7기 장선용(국문‧63년졸)씨 등 8명에게 상패를 건넸다. 수상자는 이타적인 활동으로 더 좋은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하고, 본인이 가진 능력으로 대중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선정했다. 본지는 ‘자랑스러운 이대학보인상’ 수상자들에게 ▲수상 소감 ▲이대학보로부터 얻은점에 대해 물었다.

 

요리연구가 장선용(이대학보 7기) - 1993년에 쓴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 요리책계의 베스트셀러로 지금까지 13만 부가 팔렸고, 현재 미국에도 수출돼 ‘한식의 교과서’라고 불리고 있다.

  요리를 하면서 여자로서 할 일을 다 했을 뿐인데, ‘자랑스러운 이대학보인상’을 수상하게 돼 영광이에요. 언론계에서 중요한 일을 하시는 다른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제가 이 상을 받자니 죄송하네요.
  저는 항상 가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어요. 그래서 지금 제 남편에게 아내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밥을 잘 먹이는 것 뿐 이었어요. 그렇게 하나 둘 끄적인 레시피를 모아서 책을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됐네요. 저는 가정을 잘 꾸리려면 엄마의 따뜻한 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 아들, 딸이 함께 둘러 앉아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은 중요하죠. 저는 이처럼 가정을 중요시 여겨 요리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게 된 거예요.

한국YWCA연합회 회장 차경애(이대학보 10기) - YWCA(Young Women Christian Association)에 47년간 근속하며 우리나라에 가사 도우미 교육과 보급을 정착시켰다. 현재 한국YWCA연합회 회장으로서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이대학보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죠. 지금은 없어진 신문 코너인데 제가 활동할 당시에는 학생 기자들이 쓰는 칼럼인 ‘4풍’이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학생들이 직접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기자가 느낀 것을 마음껏 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이대학보를 하면서 얻었던 가장 큰 것은 ‘전문성’이에요. 첫 직장인 YWCA에서 홍보 출판일을 맡았을 때 월마다 발행되는 ‘월간 YWCA’ 출판 작업을 했어요. 그때 학보 생활을 하면서 터득했던 편집 기술, 기자 작성법 등의 구체적인 기술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 대학 시절의 전부였던 이대학보에서 거의 40년 만에 상을 받게 돼 영광이에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장 이옥경(이대학보 16기) - 한국여성민우회 창립을 주도한 우리나라 대표 여성운동가다. 국내 종합일간지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내일신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을 역임해 언론계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는 대학 때 부산에서 올라왔었어요. 고향에서 떨어져서 그런지 첫 학기가 굉장히 힘들었죠. 도저히 학교에 적응을 못 할 것 같아서 대학 시험을 다시 봐야하나 고민했죠. 그러다가 1학년 2학기 때 학보사 시험을 봤어요. 학보사에 들어온 후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학보사에 들어와 사귄 선‧후배와 동기들도 의지가 많이 됐어요. 학보사 덕분에 대학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거죠.
  곳곳에서 학보사 출신 기자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하네요. 이대학보 후배들이 앞으로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모든 길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조현옥(이대학보 23기) -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 등을 지내며 한국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와 복지향상에 기여했다.

  학교 다닐 때도 못 받았던 상을 졸업하고 나서 받으니 감개무량하네요. 저는 이화여대를 다닌 것이 아니라 ‘이대학보 대학’을 다니지 않았나 싶어요. 3년 동안 아침에 학보사로 출근하고, 추운 편집실에서 하루 종일 뒹굴었으니까요.
  이대학보에서 쌓은 경험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된 것 같아요. 매주 신문을 만들면서 성실함을 기를 수 있었어요.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고, 취재를 하며 여러 상황을 맞닥뜨리다 보니 순발력도 기를 수 있었죠. 이러한 자산들을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독일 쾰른대 부속 정신과병원 부원장 이선희(이대학보 24기) - 본교 학부 졸업 후, 독일 쾰른대(University of Cologne)  의대를 졸업했다. 이후 15년 간 동대학부속 정신과병원 의사로 일 해왔다. 또한 아시아인 최초로 부원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제가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대학보로부터 연락을 받고 아직 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어요. 저는 28살 때 철학에서 의학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유럽 문화도 이해 못하고 독일어도 완벽하지 못한 제가 어떻게 독일 사람들의 정신을 치료할 수 있겠냐고들 했죠.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28살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데 결코 늦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여러 기사를 기획하며 도전정신을 많이 배웠거든요.
  이번 행사를 통해 30년 만에 학보사와 다시 만나게 됐네요. 학보사는 저에겐 마음속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집을 떠난 자식이 오랜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에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김금숙(이대학보 42기) - 사무직과 금융산업 노동조합에서 최초로 임원선출 시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계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것에 기여해왔다. 현재도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노동계 여성리더 양성과 여성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아름답게 기억되지만 제가 학보를 다녔던 80년대 후반은 참 힘들고 어려웠어요. 한참 민주화 투쟁과 맞물려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에 학보 기자를 하다 보니 매일 시위를 취재했어야 했죠. 당시 학보사 기자들은 밤을 새며 기사를 쓴 뒤, 좁은 골목 여관에서 쪽잠을 자면서 열정을 불태웠어요. 이대학보에서 세상을 보는 눈과 정의롭게 사는 법을 배웠고 성실함과 책임감도 배웠죠.
  저는 지금 노동 운동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이대학보 출신들이 노동 운동 쪽에도 더 많이 참여를 했으면 좋겠고, 선배로서 그 길을 잘 닦아놓겠습니다.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대우 김윤덕(이대학보 43기) -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 연재한 ‘줌마병법’ 칼럼은 생활심리를 유머러스하면서 따뜻하게 그려내 많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1988년 충북 청주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여대생의 가슴을 뛰게 했던 것은 이대학보 수습기자 모집 현수막이었어요. 그걸 보고 ‘왠지 이 길이 내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도전했죠. 3년 동안 학보사 기자로 활약하면서 가슴에 새겼던 언론정신, 시대정신 그리고 이화의 여성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오늘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기회가 오면 잡았던 것 같아요. 어떤 어려움이 생길지 고민하기보다 도전했죠. 앞으로 후배들이 어떤 일에 대해서 되든 안 되든 시행착오를 겪길 바라요. 과감히 도전하고 기회에 적극적으로 달려드세요.

KBS아나운서 황정민(이대학보 45기) - 15년 넘게 KBS라디오 ‘황정민의 FM대행진’을 진행하며 국민 아나운서로 활약해오고 있다.

  영어영문과 절친한 친구가 당시 학보사 편집국장이었어요. 그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학보사에 들어오게 됐어요. 퇴임하기 전까지 학보사를 어떻게 그만둘까를 고민했었던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저를 이끌어줬던 선‧후배가 저를 담금질해주고 학보사에서의 경험이 사회생활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후배들에게 학보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꼽자면 근성을 꼽고 싶어요. 학보사를 하고 나니 ‘내가 이대학보가 견뎌냈는데 무엇인들 못하랴’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학보사 생활만큼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면 사회에서도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취재도움=윤다솜 기자 sombly9611@ewhain.net, 박진아 기자 jina3232@ewhain.net, 공나은 기자 kne9516@ewhain.net
사진=김가연 기자 ihappyplus@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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