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1일,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쉽게 잠 들 수 없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피날레 무대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 한동안 올림픽과 김연아는 온 국민의 최대 관심사로 대한민국을 달궜다. 그리고 그로부터 2주의 시간이 흐른 지난 3월6일, 김연아는 또 한 번 국민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바로 김연아의 연애설이 터진 것이다.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단독으로 김연아의 연애 사실과 그녀의 연인이 데이트 하는 광경을 찍은 사진을 여러 장 보도했다. “뉴스는 팩트다”는 슬로건을 내건 디스패치는 그들이 그렇게도 떠받드는 팩트를 위해 김연아와 그의 연인을 6개월간 잠복 취재했다. 그들이 보도한 기사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디스패치의 단독보도를 시작으로 각종 언론들은 앞 다투어 수십 수백 개의 후속보도로 인터넷을 도배했다.

  소치 올림픽의 결과만큼이나 김연아의 연애 소식은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점차 개인에 대한 지나친 사생활침해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에 지난 10일 디스패치는 ‘디스패치'에서 말합니다…김연아, 김원중, 그리고 오해들’이라는 변명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사로 인해 김연아와 그녀의 연인인 김원중에 관한 불거진 오해들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그들은 후속보도들이 마치 소치의 심판처럼 김연아 커플을 근거 없이 깎아내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이번 사건으로 디스패치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마치 국민들을 위해서, 국민의 알 권리의 실현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몰래 취재를 하고 기사를 보도했을 뿐이다. 김연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사실상 중요한 일정의 데이트만을 취재했다는 것도, 열애설의 보도를 올림픽 이후로 한 것도 진정한 배려가 아닌 생색내기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11일 디스패치의 한 기자는 김연아의 연애보도와 관련해서 “톱스타라면 어느 정도 사생활 노출을 감수해야 된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간과한 것은 김연아는 톱스타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연아는 그들이 여태까지 취재해왔던 숱한 연예계 스타들과는 다르다. “톱스타라면“이라는 말의 전제는 그들이 대중의 사랑을 통해서 인기를 유지하는, 대중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받은 만큼 무언가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김연아는 엄연히 톱스타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선수이며 그녀가 원해서 대중의 관심으로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김연아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유명인일 뿐이므로 어느 정도 사생활 노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무를 질 필요가 전혀 없다.

  지나친 취재 방식으로 쟁쟁한 톱스타들과 관련된 열애 사실 보도로 널리 알려진 디스패치는 이제는 연예인이 아닌 스포츠인마저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는 이유로 마치 자신들이 대중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 정의의 사도인 마냥 행동하고 있다. 또한 모순적이게도 그렇게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알 권리의 주체는 정작 대중이 아니다. 제멋대로 대중의 대변인으로 나선 연애 가십 매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우리가 수업시간에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개인의 권리로 배웠던 프라이버시권은 현재 디스패치를 비롯한 연애 가십 매체들의 논리에 의해 국민의 알 권리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짓밟히고 있다.

  진정으로 독자와 교감하기를 원한다면 ‘디스패치’의 존재 바탕부터 완전히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디스패치의 존재 이유와 존립 방식은 스토킹과 사생활침해라는 완벽한 범법행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단지 철저하게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놀랄 특종을 보도한다고 해서, 과정의 오류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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