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연재 프랑스어와 정체성 (1)

▲ 쥘 프랑수아 카밀 페라(Jules Francois Camille Ferry), 제3공화정 초기에 두 차례의 총리를 역임했고 의무교육을 시행했다. 프랑스 식민지 제국주의 확장에 기여한 인물.
▲ 프랑스의 지역언어를 나타낸 지도. 고대 라틴어에서 파생된 프랑스어는 9세기에 이르러 국가 전반에 걸쳐 사용됐으나 르아르 강을 경계로 나뉘어 있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수십 개국에 걸쳐 일억 삼천 오백만을 헤아린다. 이 숫자는 일상생활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협의의 프랑스어 사용 인구이고, 프랑스어를 공용어, 법률용어, 비즈니스 언어로 사용하는 광의의 프랑스어 사용 인구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사억 오천만 명에 이른다. 원래 프랑크 족의 땅을 지칭하는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말이 프랑스어였지만 오늘 날에는 세계어의 하나가 되었다. 이와 같이 언어의 사용이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게 되면 그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언어가 갖는 의미는 복잡해진다. 앞으로 세 번의 연재를 통하여 프랑스와 캐나다 그리고 알제리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말하고자 한다.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다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이백년도 채 안 된다. 원래 프랑스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켈트족의 하나인 골족이었고 이들이 사용하는 말을 골루아라고 하였다. 이후 로마의 지배하에 골족은 로마 문화에 동화되었고 언어도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게 된 라틴어는 로마의 지식인들이 사용하던 고전 라틴어와는 다른 이른바 속어 라틴어였고 각 지역 마다 형편에 맞게 라틴어가 현지화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루마니아어의 모태가 되는 로만스어가 각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프랑스어로 소설을 뜻하는 로망 그리고 로맨스의 어원이 로만스어에 있는 이유는, 학문이나 종교 서적은 여전히 고전 라틴어로 쓰는 반면 로만스어는 대중들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샤를마뉴 대제 사후 그 영토를 분할하기 위한 스트라스부르 조약에서 처음으로 고대 프랑스어 문헌이 등장한다. 9세기에 이르러 카페 왕조는 나라 이름을 프랑스로 정했고 프랑스를 지배했던 프랑크족 왕들도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시작하였다. 크게 프랑스어라고 하지만 프랑스 중부를 가로지르는 루아르 강을 경계로 프랑스어는 마치 중국의 북경어와 광동어처럼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내에서 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웨일스에서 밀려온 켈트족이 사용하는 브르통, 알자스 지역에서는 독일어 계통의 알자스어, 피레네 산기슭에는 바스크족의 바스크어 그리고 나중에 편입된 코르시카에서는 이탈리아어에 가까운 코르스어가 사용된다. 17세기 극작가 라신이 남프랑스를 여행하다가 시골 여관에서 물을 달라는 말조차 소통이 안 되어서 애를 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근대적인 국가 개념도 없던 당시에는 지배층이 백성들과 말을 섞어야 할 이유가 없었고, 한 나라 안에서 모두 같은 말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언어의 문제를 결부시키게 된 계기는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전 유럽과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게 된 프랑스는 혁명 이념을 전파하고 민족적 동질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처음으로 언어를 중요한 국사의 하나로 간주하게 되었다. 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자유, 평등을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란 언어로 소통해야한다는 생각이 대두된 것도 이 때였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인구의 40 퍼센트만이 프랑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30 퍼센트는 아예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로베스피에르는 언어 정책에도 공포정치를 도입하여 가정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처벌하려고 하였으나, 채찍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위시하여 교육제도의 미비가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다. 혁명정부의 꿈이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백년 후 19세기 말인데, 정치가 쥘 페리가 의무 교육을 시행하게 되면서 프랑스어 보급이 전 국토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혁명기부터 프랑스어 사용을 공화국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 프랑스의 전통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차별화된다. 가령 중앙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진 표준어 보급이 성공한 이면에는 지역 언어 말살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프러시아 점령 하에서 독일어를 강요받게 된 프랑스 알자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프랑스 여타 지역에서는 프러시아가 행한 일보다 더 지독한 일을 프랑스 중앙 정부가 자행하였다.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문화 학살이라고 할 만한 아픈 역사가 있다. 유럽 의회가 지역 언어 보호 정책을 제정했지만 프랑스 의회는 좌파건 우파건 이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톨레랑스를 표방하는 프랑스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데, 이는 프랑스어를 공화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도구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역사적 맥락 밖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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