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새내기 행복방정식
이화새내기 행복방정식
  • 박정수 교수(행정학과)
  • 승인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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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개학으로 다시 교정은 활기가 넘치고 아직 바람이 차갑기는 해도 마음으로는 봄이 멀지 않아서인가 가벼운 옷차림이 보기에 좋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딛고 힘차게 일어서는 모습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곤 한다. 과연 이번 학기부터 이화동산에 함께하게 된 우리 이화새내기들 행복들 하신가?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과 감정을 극복해내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열쇠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려움을 성공의 발판과 기회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다음은 이화새내기들에게 들려주는 아홉가지 행복방정식이다. 실천하기 쉽지 않은 팁이지만 이화캠퍼스에 머무는 동안 몸으로 익히고 행동으로 옮기려 애를 쓰다보면 어느새 행복한 이화인이 되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첫째,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라.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라.

  둘째, 내려놓을 줄 알라.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은 삶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셋째, 냉정하고 침착하라. 정서적 안정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데 있어 큰 자산이다.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넷째, 행복에 집착하지 마라.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상반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강한 '멘탈'을 갖는 비결이다.

  다섯째, 현실적 낙천주의자가 되라.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넘어지면 습관적으로 다시 일어난다. 짜증내고 희망이 없다며 불평하며 포기하지 않는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은 낙천주의자의 "희망"과 비관주의자의 "현실성"을 견지하며 "현실적인 낙천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여섯째,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라. 현재에 사는 것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게 도와준다.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만 바라보지 마라. 현재에 사는 것이 두뇌활동을 증진시키고, 정서를 안정시키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일곱째, 꾸준히 목표를 향해 정진하라.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은 인내심이 있다. 투지와 기개의 중요성을 인지하자. 투지를 가지는 것은 장기적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열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덟째, 놓아줄 때를 알라. 행동은 통제할 수 있지만 행동의 결과까지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은 쿨하게 놓아줘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인지하고 포기해야 할 땐 포기하라.

  아홉째, 삶을 사랑하라.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는 삶의 시련 그 자체를 사랑하라는 거다. 우여곡절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다. 받아들이기 싫은 일일지라도 그것들을 포용하는 데서 기쁨을 찾자.

  행복의 반대편에는 불만이 자리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33위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비중도 57%나 된다는 조사결과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우리 국민들은 불만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이 결국은 오늘의 번영을 낳았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화새내기들이여, 이화의 캠퍼스에 머무는 동안 강한 정신력을 키워 행복 방정식을 학습하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를 읇조리면서...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