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 온게임넷 방송작가

 

  2년 전, 온게임넷 LOL Champions(이하 롤챔스) 서머 시즌이 한창이던 여름밤. 패패승승승으로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프로스트 팀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집에서 TV를 보던 나는 무언가 울컥하고 끓어올랐다. 그것은 비단 우승팀이 보여준 역전의 짜릿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승전 현장을 가득 채운 8천 관객의 뜨거운 환호성이 나를 끓게 만들었다. 그 에너지에 이끌려 온게임넷 롤챔스 팀에 들어왔다

# 게임 방송작가? 뭐하는 건데?

   게임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인 것 같다. 정리하자면 의 채널 중 게임 전문 채널 <온게임넷>의 에서 <롤 챔스>라는 게임 리그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작가>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해주고 나서야 ‘그래서 뭘 하는데?’라는 다음 질문을 받는다. 사실 나도 일을 시작하고 나서 극 초반에는 감을 잡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게임 방송작가’는 내가 아는 ‘방송작가’와는 다른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라는 단어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말이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롤챔스’라는 게임 리그 프로그램이다. 종목은 그 유명한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과 비슷하다고 설명을 해준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용산 경기장에는 스태프, 중계진, 선수, 그리고 관객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나는 이곳에서 모든 사람을 만난다. 무대 위 중계진에게는 그 날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 대한 자료와 이슈를 전달해준다. ‘이 선수가 이런 인터뷰를 했고, 이 팀의 상대 전적은 어떻고,’ 그리고 부조정실에 들어가 그때그때 필요한 자막들을 CG 팀과 정리한다. 다시 경기장으로 나와서 선수들을 만나 근황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경기를 지켜본다.

  한 경기, 두 경기… 자꾸 보다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독하게 깨지지 않는 천적관계는 어느 팀 간의 이야기인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 센 선수가 누구인지, 영원히 고통 받고 있는 팀은 누구인지. 모든 이야기가 게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방송작가가 가져야 할 특수성은 ‘게임’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필러 VCR에서부터 40분짜리 정규 프로그램까지. 모든 이야기가 게임에서 시작해서 게임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 일로부터 고통 받고 일로부터 위로받는 직업

   지인들은 내게 ‘일과 연애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농담 삼아서 던지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내 일과 연애를 하는 기분이 든다. 방송 경기부터, 게임 커뮤니티, 게임하는 선수들까지.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고 유심히 바라보다 보니 눈을 감아도 생각이 나고, 입을 열 때마다 게임 얘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영상을 만들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지? 고민 끝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었을 때가 가장 무기력하고 한심했다. 그러나 그 고통 끝에 순산한 영상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줄 때. 그때가 가장 기쁘다. 우리 시청자들은 정말 웃긴 영상을 보면 소위 ‘약 빨았다’는 찬사를 보내주는데, 그 말을 들을 때면 정말 약 빤(?) 것처럼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그렇게 영상이 사랑받고, 선수들이 사랑받고, 프로그램이 사랑받을 때, 그때 나도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이곳에서의 일은 마치 애인인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내게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게임으로 푼다. 생방송이 끝난 날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게임상에서 만나서 한판 시원하게 게임을 한다. 그곳에서는 후배가 선배를 잡는 사태도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PD, 작가, 위, 아래의 구분은 잠시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하는 것, 이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우리만의 스타일이고, 이곳이 나에게 너무나 잘 맞는 이유이기도 하다.

# 그래서 재미있냐?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묻는다. “그래서 재미있냐?”

  그 질문에는 단 한 가지 대답뿐이다, “네!”

   물론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따가워 고개를 숙인 적도 더러 있었고, 작가라는 직업의 불안정함에 흔들리기도 여러 번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 모든 위기의 순간들이 낭떠러지로 나를 몰아내다가도, 다시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프로그램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직 적지만,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한 위로를 받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세대들에게서 그들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잃어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안타까운 상실에 나는 더 힘차게 반항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더 사랑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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