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 아래 고향의 정 느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한민족에게 추석은 일 년 중 가장 풍성하고 넉넉한 때다. 이러한 추석을 한국에서 맞는 외국인 교수와 학생이 있다. 대학정보공시자료에 따르면 올해 본교의 외국인 전임교원 수(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는 51명, 외국인 학생 수(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 어학 연수생, 교환학생, 방문학생 기타 연수생)는 3천28명이다. 본지는 음력 8월15일 추석을 맞아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장문이(Zhang Wenyi, 국어국문학 전공 석사과정)씨와 크리스토퍼 와락사 교수(Christopher Waraksa 교양영어실)를 만나 그들의 명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국에서 네번째 추석을 맞이하는 장문이씨

 


“한국 추석은 조상에게 감사드리고 복을 빌며 절하는 날로 알고 있어요. 모든 친척이 한 집에 모여 차례 상을 차리고 절하는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죠. 정성스럽게 차례를 준비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어요. 그 모습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죠.”

 


중국에서 온 장문이씨는 작년 추석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국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한국의 차례 문화를 접했다. 그에게 추석은 중국의 중추절과 비슷하면서도 낯선 모습이었다. 특히 온 친척이 한 집에 모여 정성스럽게 차례상을 준비하는 모습은 그에게 인상적이었다. 중국 중추절에는 직계가족끼리만 모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추석과 같은 명절이 있다. ‘가을의 중간에 있다’는 뜻의 중추절(中秋節)은 중국의 최대 명절 중 하나다. 가을에 뜬 달이 단결과 화목의 상징이라고 해 단원절(團圓節)이라고도 부른다.

중추절은 우리나라 추석과 같이 음력 8월15일이다.

 


“중추절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고 송나라 때 절정이었다고 해요. 현대화되면서 의식이 축소돼 모든 친지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기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날이 돼가고 있어요. 가족끼리 월병(月餠)을 만들어 먹으며 함께 달을 보죠.”

 


우리나라의 명절 음식 송편처럼 중국에서는 중추절 때 월병을 먹는다. 월병은 밀가루를 주재료로 해 팥소와 말린 과일 등을 넣어 구운 과자다. 둥근 모양이 달과 닮아 월병이라고 불린다. 중국인은 이 월병을 과일과 함께 달에 바치기도 하고 가까운 이웃과 나누며 행복을 빌어주기도 한다.

 


한국에 온 지 4년 된 장씨는 올해 한국에서 네 번째 추석을 맞는다. 그는 그동안 추석에 중국에 있는 고향을 찾는 대신 외국인 학생을 위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그와 사정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연휴를 보냈다. 한국에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에서 온 학생이 많아서 그는 추석 행사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추석 행사에서 송편을 만들어 먹는 기회가 있었어요. 월병처럼안에 팥소를 넣더라고요. 제가 직접 만든 송편이라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어요. 제기차기 같은 한국의 민속놀이를 배우기도 했죠. 다음에는 꼭 예쁜 한복도 입어 보고 싶어요.”

 


구정 때야 무석(Wuxi, 중국 장쑤성 남부에 있는 도시)의 집을 찾는다는 장씨는 추석이 되면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외동딸인 그는 고향에 계시는 편찮으신 어머니를 걱정한다.

 


“추석이 되면 고향이 더욱 그리워요. 매일 어머니와 인터넷 전화로 통화하는데 그걸 위안 삼죠. 달을 보면서 어머니와 같은 달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추석에는 한국인 친구의 집에 가 성묘 문화를 경험할 계획이라는 장씨. 그는 달을 보며 사향(思鄕)한다. 그에게 사향은 너무 먼 고향을 가지 못하지만, 가족과 같은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가끔 가족 생각이 간절해도 그는 아직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더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해서 중국에 가고 싶어요. 중국에 가면 한국 문화를 알리고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 차례를 지내고 한국 전통 놀이를 즐기는 와락사 교수

 


“10명이 넘는 남자와 그들의 아내, 아이들 모두가 작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성묘하고 함께 동동주도 마셨죠.”

 


1994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크리스토퍼 와락사(Christopher Waraksa 교양영어실) 교수는 당시 학원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의 초대로 추석을 한국 가정집에서 보냈다. 성묘하는 모습을 처음 본 그에게 성묘는 낯선 광경이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많이 남았다. 대구에 있는 아내의 친정에 내려갈 때 8시간 넘게 걸리는 명절의 교통 체증도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다.

 


“예전에는 아내의 자매가 친정집에 오는데 12시간이 걸렸던 적도 있어요. 지금은 고속국도 45호선이 생겨 오는 시간이 4시간 정도 단축됐죠. 지독한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친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한국의 추석 모습은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과 매우 비슷하다.

 


“15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보다는 전통이 짧지만 연휴를 보내는 방법이 비슷해요. 우리 가족 남자들은 모여서 미식축구를 보고 여자들은 거실에 앉아 얘기했죠. 스크래블(Scrabble, 알파벳이 적힌 나무 조각을 임의로 주머니에서 꺼내 차례대로 하나씩 보드판 위에 올려놓고 규칙에 따라 점수를 합산하는 게임)같은 게임도 해요.”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미국 최대휴일 중 하나다. 이날은 1620년 신대륙에 도착한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처음으로 거둔 수확을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지내는 공휴일이다.

 


“11월 넷째 주 목요일에는 3년에 한 번 꼴로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며 집에서 칠면조요리를 직접 만들기도 해요. 2년 전 아내의 친가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거실에 상을 펴고 칠면조 요리를 먹었었죠.”

 


한국인과 1996년 결혼한 그는 추석 연휴를 아내의 친정 식구들과 함께 보내거나, 서울에 남아 강의를 준비하는 데 쓰곤 했다. 아내의 친정을 방문할 때면 한국 전통을 따라 차례를 지낸다.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제사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아쉬워요.”

 


와락사 교수는 추석 전날 밤에 식구들과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게임이 시작되고 모두 한국말로 말하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요. 저는 고스톱 점수를 계산하는 방법 정도까지는 알고 있는데, 장모님이 저보다 더 많은 고스톱 규칙을 알고 계시죠. 저보다 나이 많은 친지들은 제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규칙보다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규칙을 꺼내들 수 있어요. 가끔 그들이 유리할 때만 그 규칙을 적용하는 것 같기도 해요.”

 


판이 끝나면 장모님이 항상 3~4천원 더 얻어가지만, 그는 이를 즐긴다. 가족들과 게임도 하고 1만 원 정도되는 적은 액수의 판돈이 지만 장모님께 용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 와락사 교수는 서울에 남아 수업 준비를 할 계획이다.

 


“학기 중에는 사실 휴일이 별로 없어요.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하고 학생들의 에세이도 채점해야 하죠. 그러나 열정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한국 학생들 덕분에 교사로서 보람을 많이 느껴요.”

 


박준하 기자 parkjunha@ewhain.net

이경은 기자 kelee3@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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