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출신 임현주 작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외치다’ 展 3일(화)까지
버림받은 양 한 마리가 광야 위에 홀로 서 있다. 양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만 한다. 양이 한 발씩 내딛는다. 걷고 또 걷는다. 넓은 캔버스 위, 홀로 걸어가는 양의 모습은 외롭기 그지없다. 양이 언덕 너머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그곳에 꽃이 피어 있고, 나무가 울창하다. 무엇보다도 양이 외로운 감정을 씻어낼 희망이 있다.
지체장애가 있는 임현주(약학·83년졸) 작가가 작품 ‘아사셀 양1~3’에 그린 양의 모습이다. 임 작가는 광야에 홀로 버려진 양(아사셀 양1), 광야를 홀로 걸어가는 양(아사셀 양2), 오아시스를 찾은 양(아사셀 양3)을 차례로 그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때 그린 이 작품은 성경 속 ‘사람은 너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말씀을 모티브로 했다.
임 작가의 3번째 개인전 ‘외치다’가 11월27일~3일(화)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임 작가는 작품 약 30점에서 장애로 인한 외로움, 가족을 한꺼번에 잃으며 느꼈던 슬픔 등 남에게 공감 받지 못했던 감정을 양을 통해 외친다.
전시회장은 양과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임 작가의 작품에는 양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양이 지닌 양면성은 인간과 닮았다. 양은 유순한 것 같으나 고집이 세고, 혼자 있지 못하고 무리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임 작가는 “약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항상 부족하고 힘없게 느꼈다”며 “이러한 양면성을 외로운 양, 행복한 양의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장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힘들었던 시절의 외로운 감정을 외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작품 ‘그때’는 회오리바람에 사람, 자동차 등이 날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환란에 부딪혀 그동안 쌓아둔 인간관계, 재물 등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다. 이는 임 작가가 약사로 일하던 시절, 가족의 죽음에 어찌할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회오리바람의 중심부는 고요하다. 한 줄기 빛이 먹구름을 통과해 중심부에 앉아 있는 양을 비춘다. 그 아래, 회오리바람에도 끄떡없는 십자가가 있다. 임 작가는 “한 줄기 빛은 하나님의 은혜를, 십자가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임 작가의 어두운 감정이 표출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3살 때 교통사고로 임 작가에게 장애를 안겼던 기억을 살린 작품 ‘트라우마’다. 작품 속 양은 눈을 감고 풀밭에 앉아있는데 머리 위로는 무지개가 펼쳐져 있다. 양 위로는 자동차 바퀴가 지나가고 배경은 어둡게 얼룩져 있다. 임 작가의 모습을 투사한 이 그림은 삶에 제약을 준 그의 장애를 나타낸다. 학부생 시절, 그는 장애로 목발을 짚으며 통학할 수밖에 없었다. 약사가 돼서도 약국을 운영하는 데 움직이기 불편했다. 임 작가는 2005년 약국을 그만두고 외로움, 슬픔 등 그동안 이해받고 싶었던 감정을 그림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전시장 말미에는 형형색색의 꽃 장식을 달고 있는 양을 그린 작품 ‘꽃 양’이 걸려있다. 양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싶어 평범한 흰 양이 아닌, 화려한 꽃 장식을 한 양을 그렸다. 캔버스 위에 다른 배경 없이 양 한 마리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작품의 원 제목은 ‘프라이드(Pride)’다. 양의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꽃 양’을 시작으로 전시장의 출구로 나올 때 까지 점차 작품이 화려해진다. 앞선 작품이 외롭고, 우울한 양의 모습을 담았다면 이제는 꽃과 양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 기쁘고 행복한 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임 작가는 점점 행복해지는 양의 모습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구원을 받는 모습을 나타냈다. 작품 ‘꽃 양’, ‘기쁨’, ‘행복’ 등에서 꽃은 양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꽃은 양을 배경으로 피어있을 때, 양 또한 꽃 장식을 할 때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임 작가는 양과 꽃이 그와 지인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복한 양 그림을 보면 임 작가가 5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의 우정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본교 약학대학 약학과를 함께 다니고 졸업한 이들이 양과 꽃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과 닮았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임 작가는 그의 작품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임 작가가 감내해야 했던 힘들고, 외로웠던 감정이 고흐의 작품에도 묻어나서다. 그는 관람객이 작품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숨겨놨던 감정을 표출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한다. 임 작가는 “잘 그린 그림보다 관람객과 대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