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속의 여자(5)


  처음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했을 때 그들은 토착인디언들이 과연 인간인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야 하는데 개종시키자면 그들이 인간이어야 했고, 인간이라면 짐승처럼 노예로 사용하기가 어려워지는 딜레마 때문이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들은 심각하게 싸웠다.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 인간인가? 남자들은 인디언을 마주한 유럽인들과 비슷한 고민에 봉착했다. 함께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동등한 인간으로 간주해야 할 것 같은데, 남자와 똑같은 권리를 인정하자니 못생긴 원주민들처럼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던 것이다. 우선 여자들은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우며 신체적으로도 작고 약했다. 이성을 인간의 본질로 보는 관점에서 보자면 여자는 비본질적 존재이다. 이들이 가진 좋은 점이 있다면 모성과 눈부신 언변에서 드러나는 영리함 정도였다. 흄이나 칸트와 같은 철학자들은 여성을 ‘아름다운 성’(fair sex)이라는 표현을 써서 한껏 높이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책 대부분을 에밀이라는 남자아이에 대한 교육론에 바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우리 에밀’의 짝으로 소피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루소에게 있어 여자는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이런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에 강하게 도전했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유주의 여성주의 이론의 선구로 받아들여지는 영국의 메리 월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특히 지배적 가치에 반기를 드는 일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욱이 가난한 처지의 자존심만 강한 18세기 영국 여자가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녀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연달아 출판한 「인권옹호론(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Men, 1790)」과 「여권옹호론(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1792)」 때문이었다. 월스톤크래프트의 책은 당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 대응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휘그당이었음에도 토리당의 보수적 견해를 드러내었던 버크는 영국 젠트리 계층이 지녔던 엘리트주의적 도덕의식, 높은 문화의식을 찬양하고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면서 프랑스 혁명 사상이 기초하고 있는 보편적 인권, 자유, 평등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버크의 책은 월스톤크래프트의 친지였던 프라이스(Richard Price) 목사의 설교내용에 반대하기 위해 쓰인 것이었다. 프라이스 목사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찬양과 인간 자유의 신장에 대한 미래 비전을 설파했다. 버크의 비판과 보수적 입장은 월스톤크래프트를 자극하였고 그녀는 열정적 톤으로 인권과 여권의 옹호에 관한 글을 썼다. 특히 버크의 여성에 대한 입장은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여성을 동물과도 같은 열등한 존재로 봄으로써 남녀평등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도덕적, 정치적 권리는 이성을 가진 자들에게 허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성은 이성을 결여하고 있기에 이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가질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월스톤크래프트는 여성적 특질들, 특히 남성들이 비하해마지 않는 특질들은 여성의 본질이라기보다 교육의 부족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았다. 여성의 무지를 ‘순진함’으로 찬양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반계몽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여성교육을 높이 주창하였다. 교육을 잘 받은 여자가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며 결국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선구적 평등론자였지만, 여성 삶에 관한 생각에 있어서 그만큼 선구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첫 번째 딸의 아버지이자 동거인이었던 임레이(Robert Imlay)와의 불행한 관계 안에서 보였던 태도나 자살시도 등에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여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씩씩하게 타올랐던 그녀의 삶은 두 번째 출산, 후에 시인 쉘리의 부인이 되는 메리의 출산에서 얻은 산욕열로 끝나고 말았다. 성 평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어려운 문제이다. 무조건적 평등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여자에게 차별적 상황이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강조하다 보면 여자를 전통적 성 역할 안에 가두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월스톤크래프트 딜레마라고도 한다. 군복무 가산점제, 여성 군복무제, 모성보호제도 등 곳곳에서 우리는 이런 딜레마에 봉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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