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년간의 연구년을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하면서 마침내 쉴 공간을 마련했다는 안도감보다 세상과 단절된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다. 그것은 인터넷 연결이 끊긴 이틀 동안 세상에서 버려졌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엄마를 따라 시장을 나갔다가 엄마를 놓친 아이처럼 단절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고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앞이 캄캄하였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케이블 방송에서 응답하라고 외치고 있는 복고 드라마 시절을 살아온 나에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거리에서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도 못했던 풍경이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모든 것을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다. 수치화된 자아(quantified self)는 이제 각종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나의 본질을 대체해 가고 있다. 우리는 자기의 수치화된 패턴과 정보들을 보면서 비효율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을 개선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타인이 우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위험에 노출하게 한다.

  가상공간이 현실공간을 대체하면서 발생하는 몇 가지 중요한 현상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인터넷 세상은 자신의 사생활을 감출 수 있고 익명성을 바탕으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두 개의 연결 정보로도 자신의 모든 사적인 정보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노출되는 개인의 사생활이 사라져가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소위 신상 털기의 표적이 되는 순간에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는 무방비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둘째,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이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상공간은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면 관심을 얻을 수 없는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으며, 집단의 의견에 반하는 개인의 소소한 생각은 쉽게 무시되곤 한다. 요즘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웹사이트 안에서 개인의 개성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버리고 어디론가 무리를 따라가는 몰개성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셋째, 디지털 세상에서는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쉽게 느낀 바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가상공간은 현실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한 평등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수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네티즌이나 블로거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현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위세를 유사하게 누리면서 여론을 호도하거나 정보를 조작하여 자신의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권력이 지배하는 불평등한 세상에서 개인의 의견을 묵살되곤 한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로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우정을 나누고 정보를 수집하는 생활을 해 온 요즘 젊은이에게 이제 인터넷 세상과 현실 세상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루라도 디지털 기기에 접속하지 못하면 아마도 불안감과 우울함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 나타나는 몇 가지 부작용이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는 현명한 대처 방안을 고안해 낼 것이다. 그러나 정보와 소음을 구분해 내고 집단에 따라가지 않는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은 세월과 함께 성장하고 변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은 꿈과 에너지로 인해 찬란하게 빛나는 소중한 시기이다. 자유로운 지성,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 그리고 이상을 꿈꾸는 열정이 우리가 기억하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이따금 길을 잃는 것도 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과정이다. 가끔은 네모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의 미아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유롭게 개성을 표현하고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은 현실 세상에서 먼저 꿈꾸고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거울은 본질을 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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