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학생 배려하지 않는 학생식당
채식주의자 학생 배려하지 않는 학생식당
  • 조윤진 기자
  • 승인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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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채식주의자 ㄱ씨는 5일 점심을 먹으러 생활환경대학관(생활관) 식당을 찾았다. 그러나 그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기본으로 제공되는 밥과 연두부 뿐이었다. 결국 ㄱ씨는 학교 인근 샐러드 가게로 향했다. 그는 “교내에서는 채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해 학교 밖에서 매일 같은 음식을 사먹는다”며 “마음 편히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이 학생식당에 채식식단(채식주의자를 위해 야채로 구성한 식단)을 도입하는 추세다. 세종대의 고기 없는 월요일, 서울대 일부 건과대의 뷔페형 채식 식단 등 학생들이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채식을 찾고 있어서다. 본교 채식식당 추진 위원회 ‘채식하는 이화인(채리)’가 작년 5월 본교생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한 결과 상당수의 학생이 채식식당 도입에 찬성했다.

  본교 학생식당 메뉴판에는 ‘채식’이 설 자리가 없다. 본지가 6일 ▲생활관 학생식당 ▲헬렌관 식당 ▲기숙사 한우리집 식당 ▲공과대학 식당의 식단 체제(한식, 양식 등 메뉴를 분류하고 식단을 구성하는 체제)를 조사한 결과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을 따로 갖추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학생식당 메뉴 중 야채나 해산물이 들어있는 음식 종류도 부족했다. 본지가 페스코 채식주의자(Pesco vegetarian, 고기만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가장 낮은 단계의 채식에 해당한다)를 기준으로 생활관 식당의 9월~11월 식단표를 분석한 결과 전체 메뉴 79개 중 야채나 곡물로만 만들어진 메뉴는 34개(43.04%)였다. 그 중에서도 20개(58.82%)는 무말랭이 무침, 연근조림 등 하나만 먹어서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하기 어려운 밑반찬 종류에 해당했다.

  채식주의자가 참치김치찌개(7일 기준)를 주문할 경우 참치가 들어간 찌개는 먹을 수 없고 기본 반찬으로 나온 콩자반 하나에 밥을 먹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식사를 하면 메뉴 전체를 고려해 구성된 영양성분을 섭취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렵다.

  채식주의자 ㄴ(사회․12)씨는 “학생식당 메뉴에서 야채를 골라먹는 수준으로는 영양섭취가 부족해 도시락을 싸오거나 외부의 채식식당을 찾는 편”이라며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음식 대부분을 버리게 돼 식사도 제대로 하고 못하고 돈과 음식물을 모두 낭비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학생식당 메뉴판에 구체적인 음식 재료가 나와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메뉴판에는 음식명과 주요 재료의 원산지가 표시돼 국물요리는 메뉴판만으로는 육수를 만드는 데 고기가 사용됐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3년째 비건 채식(Vegan vegetarian, 육류를 비롯해 유제품, 달걀 등 동물로부터 얻은 모든 것을 먹지 않는 채식 방식)을 하고 있는 ㄷ(소비․11)씨는 “비건은 된장찌개 등 멸치나 고기로 육수를 우린 음식도 피해야 하는데 학생식당 메뉴판에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나와 있지 않아 불편하다”며 “찌개류를 먹을 때마다 조리원에게 육수 재료를 물어본다”고 말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학생도 학생식당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살생을 피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힌두교도 교환학생 ㄹ씨는 “본교에 처음 왔을 때 채식 메뉴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난감했다”며 “실수로라도 육류를 먹고 종교적 신념을 깰 수도 있어 아예 학생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학생은 교내에 채식 메뉴가 없는 실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환경동아리 ‘뿌리와 새싹’의 김지혜 전 대표는 “채식 메뉴가 없다보니 학생식당 반찬 코너에서 야채류를 따로 구입해 먹거나 생활협동조합에서 샐러드를 사먹는 편”이라며 “다양한 종교와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채식주의자를 배려한 메뉴가 학교에 전혀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학생도 채식식당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학내 채식식당 개설을 추진하는 ‘채식하는 이화인(채리)’가 작년 5월 진행한 채식식당 수요조사에는 215명이 참여해 이 중 132명(61%)이 채식식당 개설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채리 관계자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학생 대다수가 채식식당이 생길 경우 이용의사가 있다고 답했다”며 “채식주의자는 물론 건강식을 찾는 학생들을 위해서 채식식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에 본교 생활관 학생식당을 운영하는 업체는 채식 메뉴 구비를 검토 중이다. 신세계푸드 대학운영팀 이소현 직원은 “채식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그동안 채식 식단을 따로 구비하지 않았다”며 “21일부터 생활관 식당에 있는 샐러드바를 주 1회 오전10시~오후3시까지 채식뷔페로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학내 채식식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채식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신념과 관련된 문제”라며 “채식주의자가 아무리 소수여도 학교는 채식주의자 학생이 음식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지닥터(vegedoctor, 채식을 지향하는 의사모임) 배한호 전 사무국장은 “사망률의 주원인인 암과 심혈관계 질환은 주로 과다한 육류 섭취 때문에 발병한다”며 “의무교육 기간 동안 교육기관에서 채식을 일정량 제공해야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 World Organization)의 방침의 연장선으로 대학도 자율적으로 채식메뉴 제공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음식에서 야채의 비중을 높이고 고기나 육수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만으로도 채식주의자 학생들에게 학생식당에서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대학은 채식주의자를 위해 별도로 채식식단을 제공하거나 채식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세종대는 ‘고기 없는 월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월요일마다 3000원에 채식 메뉴를 제공한다. 서울대는 2010년부터 음악미술대학(음미대)과 농업생명과학대학에 뷔페형 채식식당을 운영해 학생들이 5000원에 자유롭게 채식을 즐길 수 있다. 서울대 음미대 학생식당 관계자는 “채식주의자 학생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채식식당을 운영 중”이라며 “평소 이용객이 200명~300명이며 이용객 중 80% 이상이 일반 학생일 정도로 채식주의자가 아닌 학생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