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진로 선택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그 분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고 묻곤 한다. 마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해 자꾸 말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뭔가를 하고 싶다면 대개 그 분야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있다는 것이고, 평생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도 내 분야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리고 말도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제화시대’에 그 말을 ‘영어’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기에 그 말을 ‘영어’로 해야 할 때 그 답답함은 더 크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조선시대 여성사를 전공하는 바람에 유학을 할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계속 한국에서 살았다. 영어는 어릴 때 아래층에 살던 미국 아이와 놀기 위해, 대학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서양사 수업 시간에 읽어야 했던 원전을 읽을 때, 또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한 것이 전부이다. 그 뒤로는 연구에 필요한 논문이나 책을 읽는 정도였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영어로 된 글을 찾아 읽는 편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 흔한 토플 시험도 한번 본 적 없다. 간혹 영어 레벨 테스트를 받으면, ‘아주 유창하지만, 정확도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좀 부끄러운 평가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평가가 아주 마음에 든다. 엉터리로 유창하기만 한 나의 영어가 참으로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난 당당하게 내 맘대로 영어를 말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되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 한 구석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자신에 대한 위로와 합리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당신들이 귀 기울여 들으시오’라는 생각도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그 엉터리로 유창한 영어가 더 유창해질 때가 있다. 바로 내가 정말 관심 있거나, 내가 정말 마음에 맺혀서 꼭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이다. 예전에 어떤 국제 세미나에서 한 학자가 다소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날 밤 나와 함께 방을 쓴 유럽에서 온 여성 연구자와 밤을 새며 그에 대해 이야기한 일이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영어를 하는지, 한국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세어 보나마나 200단어 정도의 영어 단어를 사용해서 했던 말을 또 하며 밤을 샜겠지만, 우리는 그 때 아무 불편 없이 긴 대화를 나눴다. 또 미국을 혼자 여행할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당시 유행하던 미국 드라마 이야기를 영어로 할 때도 어쩜 그리도 말이 잘 통하는지,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는지 의식을 못했을 정도이다.

  영어는 도구일 뿐이다. 물론 언어는 지식을 나르는 도구이므로, 그 언어 자체가 지식의 모습을 규정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른 언어를 쓸 때 사고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영어를 배워도, 영어의 사고 체계로 물들지 않는 한 그 언어의 바깥에서 겉돌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를 쫓아가기보다는 자국어로 깊이 사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영어를 할 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은 영어가 자국어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중학생 정도이며, 나의 저급한 언어구사력이 나의 지적인 수준까지도 의심하게 만들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그 중급의 표현을 쓴다 해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 말의 내용이 있을 때 그 내용은 중급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든다. 그래서 언어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이다. 어떤 상황이나 사정, 관계, 사건 등에 대해 어떤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우리는 한국어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 되어, 한국어로 사고할 수 있는 깊이 있고 독특한 내용과 그들과 다른 의견을 보여주면 된다. 오늘도 불철주야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영어 능력이 ‘실력’의 기본적 척도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나는 감히 영어 공부는 이제 그만 적당히 하고, 영어든 아니면 어떤 언어를 쓰든 ‘자신만이 말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를 돌아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의 밑바닥을 파고들어가 봤는지, 하늘만큼 땅만큼 크게, 자유롭게 상상해봤는지? 영어는 잘 못해도 자신의 의견과 입장이 있는 것과 영어는 너무 잘하는데, 아무 할 말도, 자신만의 의견도 없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슬픈가. 말을 잘하는 방법은 ‘하고 싶은 말’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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