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거리에서 손때 묻은 중고품을 사고파는 일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인 풍경은 아니다. 중고품은 새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돼 소비자들의 ‘알뜰 소비’를 돕는다. 나아가 자원의 순환 및 절감에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한 방안이기도 하다. 장기 불황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중고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 더욱 활발한 중고품 거래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대학생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다.

  이대학보사, 이화보이스(Ewha Voice), EUBS로 구성된 이화미디어센터 해외취재팀은 8월22일~9월1일 중고 문화의 메카라 불리는 영국 런던에서 중고 문화와 그 발전 방향을 취재했다. 본지는 ‘중고지신(中古知新)’을 3회 연재해 중고 문화만의 가치를 살피고 우리 중고 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런던=조윤진 기자 koala0624@ewhain.net

  영국 벼룩시장에서 중고품을 판매하는 사람 3명 중 2명은 대학생이다. 레스터대(University of Leicester) 에드먼드 차토에 브라운(Edmund Chattoe Brown) 교수(사회학과)가 작년 6월, 영국 대학생 400명을 조사한 결과 317명(약 79.25%)이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에 판매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25일 영국 솔즈버리(Salisbury)에서 열린 카부트 세일(Car boot sale, 영국의 대표적인 벼룩시장으로 자동차에 잡동사니를 진열해 판매한다)에 참여한 판매자 20명 중 대학생은 15명이었다. 판매자의 평균 연령은 23.5세. 대부분 자신이 입던 옷이나 불필요해진 책을 가져와 팔고 있었다.

  영국 중고 문화의 중심에는 대학생이 있다. 이들은 중고품 판매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넘나들며 중고 거래의 심장 역할을 한다. 본지 취재 결과 영국 대학생은 중고 책으로 개강을 준비하고 중고 시장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등 중고품 거래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 8월23일 채링 크로스 로드에 위치한 헌책방에서 한 대학생이 전공책을 고르고 있다.

  △중고 책으로 대학생활 완전 정복하기

  영국 대학생이 주로 구매하는 대표적인 중고 품목 중 하나는 바로 책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음 학기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퀸 마리대(University of Queen Mary) 테스 오아츠(Tess Oates·22)씨는 8월23일 영국의 대표적인 헌책방거리인 채링 크로스 로드(Charing Cross Road)에서 다음 학기에 필요한 전공책 「인체생리학(Human Physiologe)」을 7파운드에 구입했다. 정가(17파운드)에 비해 약 60% 싼 가격이다. 그는 “중고 책을 보면 이전 사용자가 적어둔 메모 등이 있어 책 내용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며 “새 책을 살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중고 책을 고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국 대학생의 중고 책 이용 비율은 한국과 대비해 현저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8월23일 오후6시 채링 크로스 로드에 자리한 헌책방 ‘퀸토 책방(Quinto Bookshop)’에서 기자가 이용객을 조사한 결과 30분 사이 약 48명이 헌책방을 방문해 중고 책을 구입했다. 이 중 대학생 이용객은 약 31명으로 약 64.58%에 달했다. 9월10일 같은 시각 신촌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대학생 4명이 다녀간 것에 비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책방을 운영하는 스태픈 포울러(Stephen Fowler·41)씨는 “중년층이 많은 점심 시간대를 제외하면 대학생 이용객이 대부분”이라며 “문학, 역사책도 많이 팔리지만 주로 전공 책을 사가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중고 시장에서 만남의 기회를 얻는 대학생
  대학생이 중고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도 능동적이다. 중고 시장을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교류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가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웨스트미니스터대(University of Westminister) 길버트 힙(Gilbert Heep·21)씨는 8월28일 킬번(Kilbun) 카부트 세일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자신이 내놓은 앨범을 구입한 그린위치대(University of Greenwich) 로날드 롤프(Roland Rolph·22)씨와 이야기를 하다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그는 다음주에 롤프씨와 함께 콘서트 장에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많은 대학생은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중고 거래에 발을 내딛는다. 물건을 팔면서 만나는 상인과 손님은 곧잘 친구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레스터대 칼리스타 뉴론(Calista Newlon· 23)씨는 “중고품을 팔러 나왔다가 다른 학교 학생과 친해져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며 “이런 특별한 만남이 있기에 중고 시장은 판매자와 소비자를 비롯해 두 사람 이상을 기쁘게 한다”고 말했다.

  중고 시장은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던 인연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일부 대학생은 중고 시장을 통해 동창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캠브릿지대(University of Cambridge) 로난 세인(Ronan Sane·20)씨는 “갑작스레 이사를 가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졌던 초등학교 친구를 작년 10월 포토벨로 마켓에서 만났다”며 “중고 시장을 통해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중고품을 홍보하다

  중고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대학생의 몫이다. 8월28일 오전10시 킬번(Kilbun) 카부트 세일에서는 대학생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옥스퍼드대(University of Oxford) 산티노 아이레(Santino Eyre·22)씨가 자신이 파는 중고품에 얽힌 사연을 영국 전통민요 ‘푸른 옷소매(Greensleeves)’ 곡조에 맞춰 개사해 부른 것이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홍보를 하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재밌을 것이라 생각해 시작했다”며 “실제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독창적인 홍보방법은 대학생 판매자의 주 무기다. 카부트 세일 곳곳에는 상자를 오려 만든 간판을 목에 걸고 중고품을 파는 대학생이 눈에 띈다. 간판에는 자신이 파는 중고품의 종류와 가격이 적혀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퀸 마리대 하나 알콧(Hana Alcott·24)씨는 전공을 살려 자신이 파는 중고품을 간판에 그려 넣었다. 그는 “다른 판매자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가장 자신 있는 그림을 택했다”며 “집에 돌아가서도 자신이 직접 만든 간판을 보면 중고품을 팔던 상황이 떠오를 것”이라 말했다.

  버스킹(busking, 길거리 연주)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학생도 눈길을 끌었다. 레스터대 레아 펄스(Leah Pearce·25)씨는 카부트 세일 중앙에서 작은 돗자리에 옷가지를 늘어놓고 기타를 연주했다. 그의 기타연주를 듣고 모여든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중고품을 고르고 그에 앞에 놓인 모자에 중고품에 적힌 가격대로 돈을 지불했다. 펄스씨는 “버스킹이 시선을 끌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 시도했다”며 “중고품을 사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젊은 세대가 이처럼 중고 문화의 주축이 되는 현상은 젊은 세대의 특성이 중고 거래에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영국 더럼대(University of Durham) 니키 그래그선(Nicky Gregson) 교수(지리학과)는 “대학생은 경제력이 미비할뿐더러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저렴한 중고품을 사러 중고 시장을 찾는 데에서 나아가 중고품 거래를 일종의 축제처럼 즐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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