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2학기, 전직 외교관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종종 고민 상담사를 자청했습니다. 장래 희망이 ‘대학생’인 고3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는 질문했습니다. 왜, 무슨 생각으로, 외교관 시험을 쳤습니까? 답은 두 마디였습니다. “거북이 때문에.” 느려 터진, 그 거북?

어릴 때부터 거북이가 좋았답니다. 인간보다 수명이 긴 동물, 거북이를 일삼아 공부하고 싶은 문과 학생은, 궁리 끝에 해양법을 공부하기로 하고 법대에 갑니다. 법전에서 ‘거북이’라는 단어를 찾아봅니다. 나올 턱이 없죠. 그럼 외국에 가서 보자! 외무고시를 봅니다. 결국 소원대로 외국 거북이 실컷 보고, 국제해양회의도 주재하고, 그렇게 맞이한 40대에 이화 강단에 선 겁니다.

  물었습니다. 제 인생의 거북이는 언제 나타날까요?
  한 마디 돌아옵니다. 언젠가는.
  덧붙입니다.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따졌습니다. 이걸 조언이라고 해주십니까?
  다시 답이 옵니다. 기다리면, 와.

성공한 사람의 형식적인 조언이라 생각했습니다. 불타는 청춘을 억누르고 언론고시실에 정주하던 시기, 말뜻은 그때서야 다가왔습니다. 앞이 컴컴한 때였습니다. 모두 스트레스에 포박돼 있었습니다. 그 때 지도교수님이 한 마디 하셨습니다. 어차피 언론사 문을 두드리는 단계의 수험생들은 완벽하기 어렵다. 가능성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 계속 (제대로) 해. 그러면, 된다.

붙을까? 떨어질까? 역시, 답은 없습니다. 답이 없는 게 정답입니다. 답 없는 질문지로 씨름하지 말고, 답 찾으러 지도 들고 어디로든 떠나라는 말씀이셨죠. 방점은 ‘내일’이 아닌 ‘오늘’에 찍혀야 한다는 겁니다. 이 다짐이, 제 불안을 잠재우는 우황청심환이었습니다.

앞선 말이 무색하게, 입사 직후 꽤 오랜 기간 ‘멘붕’을 겪었습니다. 하루하루 전쟁인 보도국에서 신입사원은 무능합니다. 하는 일마다 함량 미달입니다. 이 일, 잘 할 수 있을까? 적성에 안 맞는 거 아냐? 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매일 답을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약을 쳤습니다. 영화 <쿵푸팬더>의 명대사죠. 어제는 history, 내일은 mystery, 오늘은 present(gift). 답 없는 미스터리에 집착 말고, 현재를 살자. 이제 3년 차, 저는 아직도 햇병아리입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수습 시절 고민 10개 중 4개는 저절로 풀려 있습니다. 매일 깨지고, 구른 대가겠죠. 하다 보니, 조금씩 됐습니다.

입사 시험의 마지막 관문에서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대학 생활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시오. 대답했습니다. 갓 심은 과일나무입니다. 지금은 빈 가지만 보이겠지만, 곧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겁니다. (당신네 회사에서...)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말합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 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삶 또한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 이제 막 봄을 맞이한 나무에게, 가을의 열매를 강요하지 말자.” (『몸의 인문학』) 이걸 깨우치고 조급증을 치유하기까지 8학기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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