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무분별한 전도에 퇴치카드를 들다
대학가, 무분별한 전도에 퇴치카드를 들다
  • 김모경 기자
  • 승인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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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서울대 무신론 동아리 ‘프리싱커스’는 길거리 전도자들에게 거부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전도 퇴치카드’를 제작해 재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제공=서울대 무신론 동아리 ‘프리싱커스’


  #1. 지난 9일 등교를 하던 ㄱ(언정․10)씨에게 설문조사를 부탁한다며 한 사람이 다가왔다. ㄱ씨는 설문지에 적힌 질문을 읽고 대번 종교에 관한 내용임을 알아챘다. 불편함을 느낀 ㄱ씨는 개인정보를 기재하지 않고 설문지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정문까지 ㄱ씨를 따라오며 계속해서 물었다. 두려움을 느낀 ㄱ씨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2. 새내기였던 숙명여대 ㄴ(시디․11)씨는 수업을 들으러 가던 중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ㄴ씨에게 조상 이야기를 하며 가족이 해를 입지 않으려면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불교 신자였던 ㄴ씨는 ‘제사’라는 단어가 친숙했고 가족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처로 제사를 지내러 갔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는 이유로 현금을 요구했다.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낀 ㄴ씨는 현금 8만원을 지불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대학가에서 행해지는 무분별한 전도활동은 매 학기 초에 극성에 달한다.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ewhaian.com)에는 캠퍼스 내 전도활동에 거부감을 표명하는 글이 이번 달에만 약 30건 올라왔다. 같은 기간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snulife.com)에서도 관련 글에 약 80개의 거부 의사 댓글이 달렸다.

  캠퍼스 내 전도활동은 학내 종교 동아리나 타 종교 집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학생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해 교리를 전파하거나 설문지 및 전도지를 배포한다. 또한, 본교생으로 가장해 위장 포교활동을 하거나 심지어는 금품을 갈취하기도 한다. 이에 사이비 종교단체의 불법적인 전도활동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지나친 전도활동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무신론 동아리’를 결성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전도 거부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작년 KAIST에서 최초로 시작됐고 이후 서울대, 고려대 등으로 확대됐다.

  서울대는 지난 5월 무신론 동아리 ‘프리싱커스(Free Thinkers)’를 결성해 적극적인 거부 운동을 펼쳤다. 처음에는 전도활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논설문과 A4용지 크기의 ‘전도 퇴치카드’를 대자보에 붙이는 식으로 진행했다. 전도 퇴치카드에는 ‘당신이 어떤 것을 믿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반나절도 되지 않아 누군가 대자보를 훼손했고 ‘악마의 조종을 받지 말라’는 등의 항의전화가 잇달았다. 이에 프리싱커스는 학생들이 휴대할 수 있도록 전도 퇴치카드를 명함 크기로 변경해 학생들에게 직접 배포했다.

  프리싱커스 양호민(원자핵공학․09) 회장은 “거부 의사를 밝히는데도 막무가내로 전도활동을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전도 퇴치카드를 배포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비종교인을 위한 권리장전 등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 이어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에서도 프리싱커스가 출범할 예정이다. 각 대학 프리싱커스 회장들은 “최근 학내에서 불쾌감을 주는 전도활동으로 피해를 본 학생들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런 피해로부터 재학생을 보호하고자 무신론 동아리 출범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 동아리는 서울대 측에 자문을 구해 동아리 시행세칙 등을 정립하고 세미나 활동 등을 교류하고 있다.

  본교 교목실 역시 전도활동 문제에 대응책을 내놓았다. 교목실은 25일 학내 종교 동아리 및 소모임 약 40곳과 ‘기독동아리 대표자 모임 회의’를 열고 전도활동 문제에 관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11일~13일 채플 광고시간에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포교활동에 주의하라는 공지를 하기도 했다.

  장윤재 교수(기독교학과)는 “대한민국 헌법은 포교를 포함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극단적인 전도활동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프리싱커스와 같은 동아리가 출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잘못된 행위에 대응하고 있는 건전한 시민의식의 발로”라며 “물론 건전한 종교 행위까지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추가로 알립니다

  장윤재 교수(기독교학과)가 16일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극단적 전도활동은 자신의 목적을 숨기고 심리치료 등을 가장해 전도행위를 하는 위장 포교 행위임을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