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일상은 중고 문화에 물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에는 한 골목에 하나 꼴로 중고가게가 눈에 띄고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중고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고른다. 본지는 중고 문화가 영국인의 생활 속에 이토록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을 조사해봤다. 원인은 크게 ▲중고품에 노출된 성장환경 ▲중고품을 소통수단으로써 인식 ▲전통을 강조하는 영국인의 성향 ▲저렴한 가격 등이었다.

  전문가는 중고품에 대한 영국인의 긍정적인 인식이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설명했다. 영국의 중고와 자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영국 레스터대(University of Leicester) 에드먼드 차토에 브라운(Edmund Chattoe Brown) 교수(사회학과)는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경제관념을 가르치고자 자녀들을 중고가게나 중고시장에 자주 노출시킨 것이 성장 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며 “과거 구매자가 이후에 판매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중고품은 소통수단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중고품을 사고파는 카부트 세일(Car boot sale)에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이 열린다. 상인과 손님, 상인과 상인은 ‘이웃’이라는 공통적인 생각 아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다. 올해로 50년 째 카부트 세일에 참여한 제인 메기(Jane Maggie, 61)씨는 “물건을 늘어놓고 주변 판매자와 잡담을 하거나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며 “돈을 벌 생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교를 목적으로 나오는 것이라 물건을 전혀 팔지 못하고 돌아가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영국인은 또한, 중고품에 담긴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는 전통을 강조하는 영국인의 성향에서 비롯된다. 영국에서 논문 ‘영국의 중고 문화’를 준비 중인 런던 대학원(Graduate school of London) 대학원생 카롤 발사자르(Carol Balthazar, 23)씨는 “영국인은 중고품이 오래될수록 이야기가 쌓여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사고방식이 중고품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고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때, 낡은 곰인형을 인격체처럼 생각해 포장마저 사양했던 손님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중고품을 단순한 물건으로 보기보다 개인의 기억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카부트 세일에서 낡은 중절모를 구입한 실비아 코드리(Sylvia Cowdery, 37)씨는 “반드시 필요해서 중고품을 사기보단 물건에 얽힌 이야기가 좋아서 구입하는 편”이라며 “물건을 넘어서 판매자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중고품을 애용한다”고 말했다.

  영국인이 중고품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카부트 세일에서 판매되는 중고품은 평균 10파운드(원화 약 1만7000원) 선에서 거래된다. 중고품을 손질해 팔아서 가격대가 카부트보다 높은 중고가게에서도 15파운드(원화 약 2만6000원)을 넘는 중고품은 찾기 어렵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중고가게를 찾는 조나단 핑스턴(Johnathan Pinkston, 32)씨는 “중고품은 새 상품에 비해 가격이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며 “필요한 물건을 중고품으로 마련하면 경제적으로 소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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