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새 상설전시 ‘조선시대 여인의 삶’과 ‘조선시대 무관의 차림새’ 2일 열려

▲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이 상설 전시 ‘조선시대 여인의 삶’과 ‘조선시대 무관의 차림새’를 1층, 지하1층에서 2일 열었다. 한 학생이 1층 전시실에 전시된 녹원삼을 관람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조선은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가 지배하는 철저한 문치주의(文治主義) 사회였다. 그렇다면 이 시기 붓이 아닌 활을 쥐었던 무인(武人)과 관직에 진출할 기회조차 없던 여성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비록 이들이 조선사회 중심에 있는 주류 계층이라 할 순 없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문화를 구성해 나갔다.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박물관)이 2일(월) ‘조선시대 여인의 삶’과 ‘조선시대 무관의 차림새’를 박물관 1층, 지하1층에서 각각 열었다. 1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 상설테마전은 조선시대 여인과 무관의 삶을 조명한다. 박물관 오진경 관장은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조선사회를 지탱하는 내재적 힘이었던 조선시대 여성과 대표적인 남성 지배계급 중 하나인 무관의 삶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성과 계급이 구분이 분명했던 조선시대 선조의 다양한 생활상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옷을 통해 나이에 맞는 기품을 드러내다, 조선시대 ‘여인의 일생’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양쪽으로 각기 다른 전시관이 있다. 오른쪽(1실)을 선택하면 ‘여성의 일생’을 경험할 수 있다.

  제1전시실은 태(胎)항아리로 전시를 시작해 순으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에서는 아이의 태를 신성하게 여겨 이를 항아리에 담아 명당에 묻었다. 여아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소색 배냇저고리(아기가 태어난 후 처음 입는 옷), 색동저고리를 지나면 한층 화려해진 여성 장신구를 볼 수 있다. 특히 궁중 여성과 사대부 부인이 입던 원삼은 평민 여성도 일생에 한 번, 바로 혼례를 치를 때 입을 수 있었다.

  전시실 끝으로 갈수록 한복의 색상이 점차 차분해진다. 조선시대 여성은 나이가 들면 점잖은 색상의 옷으로 기품을 드러냈다. 노년에는 흰색과 옥색 등 깔끔한 색상을 선호했으며, 죽을 때는 수의로 가장 좋은 예복을 갖추어 입고 평상시 입던 옷이나 가족의 옷 등 부장품과 함께 묻혔다.

△여류문화를 빛낸 여성과 조선의 커리어우먼들

  전시는 여러 계층과 직업군에 속한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2관으로 이어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파란색 비단에 화려한 금박 무늬가 촘촘히 박힌 적의가 시선을 압도한다. 순정효황후가 실제로 입었던 적의를 고증해 재현한 옷이다. 버선 역시 폭이 좁고 색이 없는 일반 버선과 달리 넓은 폭에 청색이 은은하게 감돈다. 오늘날 스카프처럼 어깨에 걸쳐 늘어뜨리는 장신구인 ‘하피(霞帔)’는 적의에 아름다움을 한층 더했다. 왕실 의복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니 나비와 두꺼비가 도드라지는 초충도와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자랑하는 매화도가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여류화가 사임당 신씨의 작품인「하채가자」과 「고매첩」에 그려진 그림이다.

  조선시대 ‘전문직 여성’의 생활상도 볼 수 있다. 오른쪽 귀퉁이에서 돌면 짚풀에 엮인 맹두(신칼)과 성인 팔뚝만한 삼지창이 나온다. 양반 여성의 고고함이 묻어난 서화와 달리 살벌한 느낌도 사뭇 풍기는 이 도구는 무녀가 사용했다. 조선시대 무녀는 여무(女巫) 또는 만신(滿神)이라 불리며 이 제구로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기원했다.

  궁녀나 기녀가 입었던 통이 넓은 바지인 ‘말군’도 있다. 말군은 여성들이 말을 탈 때 속옷이 보이지 않도록 치마 위에 덧입은 바지로 아래에 펼쳐진 명성황후 발인반차도에서 실제로 말군을 입었던 궁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제주도 바닷가에서 어업에 종사하며 주체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간 해녀, 예인(藝人)으로서 예술적 감성과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던 기녀 등 여성의 다양한 생활상이 뒤를 이었다. 신분의 구애를 크게 받지 않고 특수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이들은 조선판 커리어우먼이었다.


△용맹무쌍한 기개가 드러나는 조선 무인의 옷자락 

  조선시대 무관은 공작 깃털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전립(戰笠)이나 호랑이 수염을 꽂은 주립(朱笠)을 쓸 정도로 복식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에게 복식은 무인으로서 위엄과 품위를 나타내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박물관 지하1층 담인복식미술관에서 열린 상설전시, ‘조선시대 무관의 차림새’를 통해 무관의 복식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입구 쪽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무인의 옷을 꾸미던 장신구와 무기 관련 용품이 채워져 있다. 건너편의 의복 전시실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 조선 초기부터 신식 군대가 개설되는 조선 후기까지 무관 차림새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복식 유물 가운데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옷깃이 넓은 옷은 ‘철릭’으로, 조선 초기부터 군복으로 착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문무관이 함께 활동복으로 입었던 철릭이 장식적인 겉옷으로 변모해가자 군복은 소매가 좁고 트임이 있어 기능성이 보다 강조된 ‘동달이(소매 자락의 천을 몸판과 다른 색으로 대어 만든 옷)’와 ‘전복(동달이 위에 겹쳐 입는 소매 없는 겉옷)’으로 바뀌었다.

  전시실을 거의 다 돌 때쯤 대한제국 시기의 서구식 군복이 등장한다. 예복 어깨 좌우에 달아 계급을 표시하던 견장에 새겨진 태극 문양이 낯설지 않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군제가 개편되며 몸에 맞는 입체적인 형태의 서구식 군복이 채택되며 전통양식의 군복은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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