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이 시대를 이야기한다면.
먼 훗날, 이 시대를 이야기한다면.
  • 정지영 교수(여성학과)
  • 승인 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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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전공 분야는 조선시대 여성사다. 여성학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역사학 연구자이기도 하다. 현재의 여성문제도 고민할 거리가 많은데, 왜 하필 조선시대 여성을 연구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름 그에 대한 대답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를 전공한다고 하지만, 과거의 시대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지나간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낡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말했다. 퍼즐 조각은 대부분 없어졌거나 남아 있다 해도 그림이 지워졌다. 눈 감고 코끼리 더듬듯이 ‘아, 여기가 다리인가, 코인가’ 생각하며 막연하게 형체를 그려보는 셈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리 궁금해도 그들을 찾아가 만날 수도 없고, 그들 삶 속에 들어가 살면서 체험할 수도 없다. 이는 연구자로서 늘 아쉬운 일이지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어서 그나마 내 나름대로 그 시대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 살아 있어서 내 논문을 읽고, “우리 그렇게 안 살았다”고 한다면,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다.

   하지만, 조선시대 규방의 부인이 귀신으로 나타나서 그렇게 말한다 해도,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당신이 살았던 시대를 다 안다고 생각하시냐?”고 물어볼 참이다. 귀신과 논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길 자신은 없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다. 조선시대라고 해도 어느 시기인지, 지역이 어디인지에 따라서도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신분의 높낮이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고, 그가 유학에 매료되었는지, 불교신자인지에 따라서도 세상을 다르게 이해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던 누구인지에 따라 그가 본 세상은 다른 것이다. 물론, 그의 경험과 생각 속에 그 시대의 특징이 담겨 있으며,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가 그에게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가 ‘인식’하고 생각한 것, 그의 시대라고 본 것은 분명 ‘일부분’인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수십년에 걸쳐 작성된 경상도 호적대장도 샅샅이 봤고, 조선왕조실록도 거의 전체를 훑었고, 양반들의 문집뿐 아니라 그들의 내밀한 일기도 읽었고, 여행기, 재판 기록, 재밌는 설화들, 소설들까지 두루 섭렵했으니, 그가 몰랐던 세상도 알고 있다고 큰소리 칠 만하지 않은가.

   왜 갑자기 고루한 조선시대 타령인가 하겠지만,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조선시대 규방의 부인만 자기의 시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시대보다는 차라리 조선시대를 더 잘 아는 것도 같다. 이 시대는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해를 해보려고 이 시대에 이름을 붙여본다. ‘스마트폰 시대’, ‘아르바이트의 시대’, 아니면 ‘힐링의 시대’? 아, ‘연애의 시대’, ‘몸 만드는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도 있겠다. 여전히 나는 내가 사는 이 시대를 뭐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먼 훗날의 역사가들도 21세기 전반의 이 시대에 대해서 책을 쓰고 논문을 쓸 것이다. 내가 귀신이 되어 그걸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살면서 몰랐던 것을 죽어서 그의 글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 만일 그렇다면 좀 참담한 기분일 것 같다.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면, 내 주위, 내가 보고 겪는 것을 넘어서 큰 흐름 속에 또 먼 시선으로 이 시대, 이 세계의 움직임을 읽어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어떤 구도 속에 관계들이 엮여 있는가. 그 세상 속에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느 정도 지점에서 살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내 삶은 왜 이런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 삶이 이리도 울적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아무리 힐링을 외쳐도, 힐링이 안되고 왠지 나만 힐링이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에 좌절하게 될 때. 자신의 생활 반경 속에 작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긴 역사적 시-공간 속에 우리가 사는 이 시간, 이 공간을 배치하고, 또 그 속에 자신의 좌표를 그려보자. 의외로 이 세상이 흥미진진하게 뒤엉켜 있음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생각보다 단순한 그림으로 정리될 수도 있다. 그러는 중에 나의 고민을 풀어낼 실마리를 새롭게 찾게 될 수도 있다. 혹시 나중에 귀신이 되어 후대의 역사가와 만나서 21세기 초반의 시대성에 대해 논하게 된다 해도, 뭔가 할 말이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