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관 멋있게 지었던데.”

  블로그 이웃이 윤동주 문학관 소식을 전해왔다. 소식을 듣고 방학 중 그곳을 찾았다. 2년 만이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이소진 건축가가 수도가압장을 활용해 임시 건물을 쓰던 곳을 재건축해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이곳을 ‘시를 위한 공간’, ‘보석 같은 공간’이라고 극찬했고, 이전보다 많은 방문객이 윤동주 문학관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인의 얼은 공간에 담겨있다. 이는 단순히 거주하는 역할을 넘어 문인 자체를 나타낸다. 그러나 문인이 글을 쓰던 장소, 집 등 문화재는 보존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윤동주 문학관도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2년 전 취재로 찾았을 때 윤동주 문학관은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거의 그대로 쓰고 있었다. 윤동주 생가에서 가져온 물건은 줄 맞춰 배치한 것이 전부였고, 서시 영인본만 액자에 간신히 끼워져 있었다.

  문화학술부 정기자였던 2년 전 ‘문학만보’라는 연재 기사로 보존 받지 못하는 문인의 흔적을 좇았다. 현진건, 김수영, 이상, 박목월. 국민작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쟁쟁한 이 인물들의 집터는 보존 받지 못했다. 이유는 터무니없었다. 현진건 집은 건축 허가가 안 떨어지자 소유주가 밤새 몰래 현진건 집을 헐어 터만 남았다. 무방비했다. 김수영 집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폭설로 무너졌고, 박목월 집은 후손의 경제난으로 팔려 그 자리에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현진건 집터는 폐허 상태 그대로 경매로 넘어갔고, 김수영과 박목월 집터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곳을 기리는 비석만 남아있다.

  반면, 통인동 이상의 집터는 2년 동안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곳 역시 이전에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2002년 김수근문화재단이 매입하면서 잠시 그 위기에서 벗어났다.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과 문화유산 시민단체 아름지기가 관리하기 시작했다가 한동안 방치됐다. 이후 이상의 집터는 서촌 한옥과 함께 재조명되면서 수많은 논의 끝에 2012년 ‘제비다방’으로 재탄생했다. 제비다방은 올해 이상의 기일인 4월17일까지 각종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했다. 제비다방이 시민에게 개방된 4월에는 하루 평균 약 600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현재 제비다방은 8월까지 낡은 한옥 보수와 미래 운영 방향 연구로 잠시 문을 닫기로 했다.

  이상의 이십대 초반까지 살았던 통인동 집은 21세기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인 제비다방이 됐다. 이상은 1934년 종합잡지 「삼천리」의 ‘끽다점 평판기’에서 묘사한 ‘제비다방’을 이렇게 쓴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긔분 잇서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喫茶店) 중 가장 이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일홈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끄은다”

  이상의 제비다방은 명작을 창조케 하는 소중한 공간이었고, 이후 대표작 <날개>의 배경으로 문학 작품 속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 제비다방은 다시금 피어오른 시민의 관심 속에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문인의 문화재 보존은 이제 겨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프로젝트에서 오랜만에 봄기운이 느껴진다. ‘시의 도시 프로젝트’는 시민과 시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로, 서울시는 서울에서 출생, 작품 활동한 시인의 발자취를 발굴,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앞으로 ‘시의 도시’를 만든다고 하니 조만간 향긋한 문학의 봄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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