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회 ‘이화글빛문학상’수상자 편정인씨 이도은 기자 doniworld@ewhain.net

  “소설「씨티홀」은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죠. 인간이 운명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고, 인간이 욕망을 따르는 행동에 잣대를 들이대고 비난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제8회 ‘이화글빛문학상’에 편정인(분자생명․12)씨의 소설 「씨티홀」이 당선됐다. 편씨를 21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씨티홀」 속 인물은 각기 다른 욕망을 추구한다. 주인공 아르바이트생은 안정적인 직업 등 보통의 욕망을, 남자는 치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등 젊음에 대한 욕망을, 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욕망을 버리려는 무욕을 욕망한다. 편씨는 이들로 인간이 욕망을 따를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운명을 표현하고자 했다.

  “실험용 쥐에게 치즈를 던져주고 관찰하듯, 이들에게 1등 당첨 복권을 던져주고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누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 건 미뤄두고 소설을 읽어주면 좋겠어요.”

  「시티홀」은 편씨가 사회적 사건을 접하고 느낀 분노에서 집필하기 시작했다. 소설에서 사람들이 백혈병을 산업재해(산재)로 인정할지 여부로 갈등하는 장면은 2007년 근무 중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를 삼성사가 산재처리하지 않은 사건을 꼬집은 것이다. “저는 어릴 적 별명이 ‘삐죽이’였을 정도로 불만이 많았어요. 불만은 분노로 이어졌고, 그런 분노 덕분에 소설을 쓸 수 있었죠. 부조리한 사회 현상에 관한 분노와 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소설의 출발점이라 생각해요.”

  편씨는 역대 이화글빛문학상 수상자 중 유일한 과학도다. 그는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해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문학에 관심이 많다. 편씨는 작년 5월 ‘제1회 기숙사 에세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등학생 때 옷 속에 몰래 책을 숨겨 기숙사에 반입해 휴대폰 불빛에 비춰가며 읽다가 퇴사당한 적도 있죠. 남들은 제가 과학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때 문학은 제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문학과 거리가 먼 학문을 공부하다보니 더욱 절실하게 문학에 매달리게 됐죠.”

  편씨는 창작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저에게 과학은 현실이지만, 문학은 꿈이에요. 현실적인 여건에 따라 여전히 공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문학을 끝까지 놓지 않을 생각이에요. 끊임없이 읽고 쓰면서 언젠가 사회의 부조리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가가 될 겁니다.”




「시티 홀」 도입부

1. 손님
  나는 눈이 좋다.
  눈이 좋은 건지, 눈이 좋은 건지, 고민할 사람들을 위하여 한 번 더 말해준다.
  오른쪽은 1.5, 왼쪽은 1.2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눈이 좋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눈이 좋은 것은 지금 내가 말하려는 사실과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반드시 도수 0.0의 서클렌즈를 낀다. 이것은 내가 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렌즈를 끼는 것도, 눈이 좋기 때문에 도수 0.0을 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틀 동안 아리수에 불려놓은 일회용렌즈만 낀다. 반드시 아리수여야만하고, 반드시 일회용렌즈여야만 한다.

그럼,

  세상이 눈물 져 보인다. 실비 내리는 먹구름 낀 하늘 아래 서있는 기분이다. 흐릿흐릿, 아릿아릿, 가슴 한쪽이 여리여리 저려오면서 진짜로 눈구멍에 눈물이 가득 찬다. 나 자신이 불쌍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 나는, 비 내리는 하늘 아래서 묘하게 비틀린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내 또렷하고 새카만 눈동자에 반한다. 나는 예쁘다.
  난 예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토록 예쁜 날 대학에 보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것이 미국에 있는 대학이든, 북한에 있는 대학이든, 혹은 영국에 있는 대학이든, 인도에 있는 대학이든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수능 성적표가 나왔고 원서를 썼고, 실기를 봤다. 모두가 내 미모에 반했지만, 아무도 내 작품에 반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그리라고 내주는 식물이, 섬유가, 목재가 싫었다. ‘합격’이라는 탐욕의 눈빛들을 한 몸에 받으며 축 늘어져 있는 그 모습들이 너무 익숙해서, 그냥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 같아서 역겨웠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살아있는 것,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싶었다. 시험장에 있는 ‘것’들 중 살아있고 아름다운 건 나밖에 없었다. 미술학원에서 배운 스킬을 쓰는 대신, 캔버스 앞에 앉아 거울만 봤다.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였고, 거울 속엔 아름다운 내가 있었다. 아름다운, 내가, 있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 하늘 아래, ‘INTHERAIN’이라는 간판 아래, 방금 산 빨간 우산을 팡, 하고 터뜨린 남자가 건너편의 나를 바라봤다. 그의 새빨간 새 우산에 빗방울들이 톡, 톡 하고 떨어져 흘러내렸다. 빗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순간이었다. 문득 이 세상이 낯설었다. 하늘에서 물이 낙하하고, 사람들은 그 물을 맞지 않기 위해 쇠꼬챙이에 비닐을 씌운다는 사실이, 비닐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한다는 게. 그들은 그리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식물을, 섬유를, 목재를 그리는 것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편의점에 간다. 무얼 사러가는 게 아니라 무얼 팔러가고 있었다. 시간당 4400원의 돈을 받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오는 시간들을 죽이는 일이었다. 편의점에서 내 시간의 가치는 4400원이었다. 일류대학을 나와 과외를 하는 친척오빠의 한 시간은 이만 원이었다. 나는 분했다. 그의 인생은 이만 원 곱하기 이십사 곱하기 삼백육십오 곱하기 팔십 원인데, 내 인생은 사천사백 원 곱하기 이십사 곱하기 삼백육십오 곱하기 팔십 원이라는 사실이. 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분하지는 않았다. 그는 일류대학을 나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썼으니까. 그가 지금 돈을 버는 것은, 부모님께 빌린 대학 등록금을 갚는 일이었다. 그는 똑똑한 빚쟁이였고, 적어도 난, 멍청해도 빚은 없었다.
  오전 근무자는 재빨랐다. 내가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내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앞치마를 벗어던지더니 명찰에 붙은 바코드를 찍고 퇴근버튼을 눌렀다. 유통기한이 1초, 아니 그 이상 지난 바나나 우유와 삼각 김밥, 샌드위치 등을 큰 배낭에 쑤셔 박더니, 수고하세요, 라고 걸쭉하게 외치며 다시 딸랑, 하며 사라졌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난 고요 속에 남겨졌다. 고양이의 방울이 멀어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홀로 남겨진 쥐가 된 심정이었다. 고양이가 두려웠지만, 방울은 그리웠다. 난 천천히 살이 다 휘어진 고물 우산을 내려놓고, 내 명찰을 찾아 바코드를 찍는다. 출근 버튼을 누르고, 그의 분주했던 아침 냄새가 밴 앞치마를 몸에 두른다. 명찰을 앞치마에 달고 나자, 할 일이 없다. 없다, 할 일이.
  돈을 버는 시계침은 느리게 간다. 돈을 쓰는 시계침은 늘 빠르게 가는데 말이다. 돈이라는 차갑고 육중한 금속성의 욕망을 가득 짊어진 채 걸어가는 초침은 너무나 지친다. 그래서 나도 지친다. 콘돔을 찾는,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 뭐 찾으시는 거 있냐는 내 질문에, 아아아뇨! 라고 대답해 놓곤, 결국 한참 만에 들고 오는 건 콘돔인, 그런 사람들을 대하고 있으면 답답하다. 왜 당당히 콘돔 없어요? 하고 물어 오질 못하는 거야. 작고 납작한 상자의 좁은 면에 지긋이 눌어붙어있는 바코드를 찍으며 나는 속으로 비웃는다. 병신, 하면서.
  오늘은 우산을 찾는 손님이 많았다. 그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채 가장 싼 게 뭔지 물었고, 난 하얀 거요! 라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은 제일 쌌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물을, 섬유를, 목재를 그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돈을 벌어 대학에 가려고 식물을, 섬유를, 목재를 그리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손님들이 내미는 하얀 우산을 삼십 개쯤 팔았을 때, 삼십일 번째 손님이 딸랑, 하며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쥐에스이십오입니다, 라고 말했고, 손님은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쳤다. 어서 오세요의 대답이 안녕하세요인가. 손님의 엉킨 머리카락 끝에서 빗물이 또옥, 또옥 떨어져 바닥을 적시는 광경을 바라봤다.
  빗물의 흔적은 우산들을 향해 가지 않았다. 손님은 밑창이 다 닳아져 아스팔트에 붙은 껌 딱지 하나라도 여실히 느낄 수 있을만한 컨버스화를 신고 자박자박 걸었다. 그 밑창만큼 그 걸음도 정직해 보였다. 지루하고 지루한 난, 손님을 관찰하며 시간을 죽였다.
  손님은 과자코너에 서있었다. 여전히 축축한 머리카락에서는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또옥, 또옥 하고 빗물이 떨어져 내렸다. 휘이잉, 하는 바람소리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고, 비를 잔뜩 맞고 과자코너 앞에 서있는 저 손님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젖은 머리는 빗질 한번 하지 않은 것처럼 제멋대로 엉켜있었고, 여드름이 뒤덮인 피부는 우둘투둘 귤껍질 같았다. 원래 빨간색이었으나 때가 타서 와인색이 된 건지, 아님 처음부터 그냥 와인색이었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후드 집업과 회색 면 티,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입었을 법한 통 큰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손님은 수미칩을 집었다. 먹을 듯이, 당장 사겠다는 듯이, 계산대로 가지고 왔다.
  그리곤 수미칩을 번쩍 들고 내게 물었다.
  -초록색 없어요?
  -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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