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왔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의 끝자락에 올해도 어김없이 스크린 속 ‘그녀’들을 만날 수 있다. 올해 15회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여성영화제)’이야기다.

  여성영화제가 24일 개막을 시작으로 30일(목)까지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린다. 이번 여성영화제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See the World through Women’s Eyes!)’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28개국 110편의 초청작과 함께한다.

  ‘She’s coming, 그녀가 온다’를 주제로 진행되는 여성영화제는 여성주의, 노동, 생태, 평화의 문제를 다룬 영화가 상영된다. 여성영화제 프로그램은 ▲새로운 물결 ▲아시아 스펙트럼: 아시아 여성영화 성장기 ▲쟁점: 보이지 않는-폭력의 관계구조 ▲여배우, 카메라를 든 뮤즈 ▲퀴어 레인보우:퀴어×페미니즘 등 12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이번 여성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고 여성주의 가치를 믿는 관객이 모여 새로움을 포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 여성영화제 초청작 110편에는 수많은 여성이 담겼다. 그중 시대를 대표하던 여성 뮤즈와 폭력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작품을 뽑아 소개한다.


△여성 영웅을 만나다.

  당신의 어린 시절 영웅은 누구인가? 남성 영웅을 먼저 떠올렸다면 여성영화제에서 그에 대척할 ‘슈퍼 히로인’을 만나볼 수 있다. 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프로그램에 원더우먼,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등 여성 영웅이 등장했다. 크리스티 게바라 플래너건(Kristy Guevara Flanagan) 감독의 ‘원더우먼! 슈퍼 히로인’은 1940년대부터 원더우먼 역을 맡았던 배우 린다 카터(Lynda Carter)부터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까지 힘 있는 여성을 통해 원더우먼의 매혹적인 역사와 유산을 추적한다. 여성영화제에서 ‘새로운 물결’ 프로그램을 기획한 홍소인 프로그래머는 “슈퍼 히어로가 넘쳐나는 시대에 캐릭터 강하고 파워풀한 여성 영웅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널리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쓴 여성 영웅도 있다. 마가레테 폰 트로타(Margarethe Von Trotta) 감독의 영화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임에도 객관적 시선으로 나치를 바라본 저널리스트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이야기다. 철학자로도 유명한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도 악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해 같은 유대인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자칫하면 나치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아렌트가 나치 전범에게 느낀 분노와 자신의 철학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을 글쓰기로 극복하는 모습을 담았다. 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규정한 ‘악의 평범성’에 관해 영화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여성영화제의 ‘쟁점: 보이지 않는-폭력의 관계구조’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품 13편은 사회 속 여성이 여전히 폭력에 희생되고 있다고 말한다. 감독들은 여성을 향한 폭력을 사회, 가족, 종교를 통해 살폈다.

  프리야 고스와미(Priya Goswami) 감독의 다큐멘터리 ‘살점 하나’는 인도의 한 부족이 행하는 할례로 고통받는 소녀의 이야기다. 여성 할례는 성욕 억제를 위해 어린 여성의 성기 일부를 절제하는 일부 부족의 끔찍한 전통이다. ‘살점 하나’의 주인공 소녀는 이를 거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프리야 감독은 할례를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과 사회 전통으로 보는 양쪽의 입장을 보여주며 관객이 고민할 거리를 제시한다.

  가정폭력을 담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도 볼 수 있다. 아오리(Aori) 감독의 ‘잔인한 나의, 홈’은 아오리 감독이 겪은 가정폭력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지만 오히려 가족과 친척에게 쫓겨났다. 아오리 감독은 성폭력 가해자인 가족과 친척을 고소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며 여성가정폭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시아 스펙트럼’, ‘오픈시네마’ 등을 기획한 황미요조 프로그래머는 “‘폭력의 관계구조’ 프로그램 섹션을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여성 문제에 관심 있는 남성 감독이 여성영화제에 함께 참여했다. 젠더 이슈에 관심 있는 남성 감독이 참여하는 ‘오픈 시네마’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김태용 감독의 ‘그녀의 연기’ 등 5편을 볼 수 있다.

  영화 감상 외에 감독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부대행사도 마련됐다. 27일(월) 열리는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쟁점: 보이지 않는-폭력의 관계구조’ 프로그램의 연장으로 ‘보이지 않는’의 미할 아비아드(Michal Aviad) 감독, 아오리 감독,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가 패널로 참석해 성폭력과 피해자 문제를 토론한다. 또한 29일(수)에는 미얀마의 필름스쿨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학생과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학도, 감독이 함께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해 발표하고 대담하는 워크숍도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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