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을 만나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이 자신의 대학 시절을 회고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최형욱 기자 oogui@ewhain.net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여성영화제)’가 올해 15회를 맞았다. 여성영화제는 여성주의, 여성인권 등의 시각이 담긴 세계여성영화를 소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여성영화제다. 그간 본교 출신 영화감독인 변영주, 부지영 감독 등이 참여하는 등 여성문제를 고민하는 공론의 장으로 거듭났다. 여성영화제가 자리 잡기까지 영화제와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여성영화제 이혜경(사회복지‧75년졸) 집행위원장이다. 여성영화제 개막을 이틀 앞둔 이 집행위원장을 22일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 아트레온에 있는 여성영화제 사무국에서 만났다.

  이 집행위원장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 시절 문리대(현 인문대) 연극부에서 활동하면서다. 그는 이 시절 대학 연극에 관해 고민하며, 실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국내외 희곡을 공연하려 했다. 그러나 연극부 전통을 깨기란 녹록치 않았다. 1970년대 문리대 연극부는 영어영문학과 지도 교수 아래 영미계통 작품만 공연해왔고 작품 선정도 교수의 재량이었다. 결국 이 집행위원장은 연극부장이 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기존 영미희곡만 공연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한국 신파극, 독일 희곡 등 다양한 작품을 학생 주도로 공연하게 됐다.

  “대학 연극의 모든 과정은 학생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스위스의 극작가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를 공연하기로 한 적이 있었어요. 작품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어 연극부원과 함께 번역을 직접 하기로 결심하고 밤새 번역하기도 했죠.”

  이 집행위원장은 타대학 연극부와 교류하면서 여성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했다. 그는 낭만적인 작품만 공연하는 본교 연극부에 한계를 느껴 여러 대학의 연극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 집행위원장은 타대 연극부에서 활동하는 남학생이 여성에게 수동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대 연극부와 교류하며 한 남학생과 친해졌는데 저를 여자라는 이유로 동료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남학생에게 저는 여동생 내지는 연애상대에 불과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직접 여성문화예술운동을 해야겠다고요.”

  이 집행위원장은 1992년 여성문화예술기획단체를 만들어 대학로에서 여성연극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회는 여성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고 여성문제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연극작품을 많이 준비해도 일 년에 한 작품 밖에 못했어요. 함께할 사람도 필요했고, 물론 금전적 어려움도 따랐죠. 그때부터 연극이 아닌 영화로 여성문제를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영상이라는 언어로 세계 각국의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탄생한 여성영화제가 올해로 15회를 맞이하기까지 그는 관객동원, 금전적 문제 등 영화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었다. 매해 4월에 열리던 영화제가 5월에 열리게 된 것도 정부와 서울시에서 주는 기금이 늦게 나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큰 벽은 여성영화제를 바라보는 사회의 남성적인 시선이라고 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남성중심의 사회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여성을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제도에 맞서 아무리 치열하게 싸워도 문제의 해결이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여성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도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제의 주제를 따로 만들었어요.”

  이번 영화제 주제는 ‘She's coming, 그녀가 온다’이다. 이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그녀’는 특정 여성 한 명이기도 하고, 여성문화, 여성신화 등 여성과 관련된 이슈를 가리키기도 한다. 사회에는 각기 다른 여성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객은 그 여성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성영화제에서 관객이 자신만의 ‘여성’의 의미를 찾고 갔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여성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여성영화제에서 만들어주고 싶어요.”

  이 집행위원장은 많은 사람이 여성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에 치열하게 비판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문제에 자발적인 비판이 자연스러웠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보더라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관객의 반응이 달라졌어요. 물질적인 것에는 풍족해졌지만 다른 부분은 부족한 느낌이에요. 경쟁사회 속에서 스펙 쌓기에만 열중하고 사회문제는 고민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적어도 여성영화제의 관객에게는 사회문제를 좀 더 치열하게 비판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여성영화제를 찾는 관객, 특히 대학생일수록 어떤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생일수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세요. 자신과 자신이 사는 사회를 고민하는 것은 중요해요. 어떤 대상을 발견하고 빠져드는 것. 또 그 대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 이 두 가지를 반복하다보면 자신을 알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어요.”

  이 집행위원장은 사랑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잊고 있는 여성문제를 페스티벌을 통해 모색하고 싶었다. 그는 이번 영화제 속에서 관객이 자신만의 여성이 무엇인지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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